격리와 단절의 시기, '느슨한 연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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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와 단절의 시기, '느슨한 연대'를 말하다
'2020 강한시민사회 4차 포럼-코로나19 이후 비영리 생태계의 변화 시나리오: 지금 다시, 연대와 협력' 개최
  • 2020.10.23 07:19
  • by 노윤정 기자
▲ '2020 강한시민사회 4차 포럼-코로나19 이후 비영리 생태계의 변화 시나리오: 지금 다시, 연대와 협력'이 16일 열렸다. 온라인 화면 갈무리.
▲ '2020 강한시민사회 4차 포럼-코로나19 이후 비영리 생태계의 변화 시나리오: 지금 다시, 연대와 협력'이 16일 열렸다. 온라인 화면 갈무리.

전염병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하여 사람들 사이의 '거리두기'가 강조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연대와 상호부조의 힘이 필요한 재난의 시기지만 모순적이게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협력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서로 거리를 두고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격리되고 관계가 단절되기 쉬운 시기, 사회는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하며 재난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할 수 있을까. 또한, 그 속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16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 강한시민사회 4차 포럼-코로나19 이후 비영리 생태계의 변화 시나리오: 지금 다시, 연대와 협력'에서는 전염병 팬데믹 상황에서의 비영리 생태계 과제와 연대·협력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다.

■ 느슨한 연대 만들 수 있는 '안전한 공간' 필요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온라인 화면 갈무리.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온라인 화면 갈무리.

이날 기조강연은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지금 다시, 연대와 협력'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김 교수는 "우리는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하지만 관계 맺기가 쉽지만은 않다"고 운을 떼며 사회적 관계망이 위축돼 있는 현실을 먼저 짚었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그 요인으로 사회적 지능의 결핍, 트라우마, 번아웃, 낮은 자존감, 그리고 기회와 공간의 부족을 꼽았다. '기회와 공간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비좁은 사회적 인연의 통로를 넓히는 것이 해결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대면 시대에 어떻게 사회적 인연의 거점을 찾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사회적 인연의 거점을 형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삶의 품격과 존엄이 보장되는 비노동 세계 ▲삶의 이야기가 확장되는 안전한 공간 ▲실재 감각(presence)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접촉은 줄이되 만남은 유지할 것 등을 제시했다. 이 중 '비노동의 세계'란 시장에서의 위치와 관계없이 한 사람으로서 존중 받고 인정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의미하며, '안전한 공간'은 나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공간을 의미한다.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을 때 그 안에서 '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타인과 교감하면서 관계가 확장되고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온라인 화면 갈무리.
▲ 온라인 화면 갈무리.

김 교수는 "좋은 사회는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 보이는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낯선 사람들 사이의 느슨한 연대를 강조했다. 이렇게 낯선 사람들끼리 연결되고 연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지 않으면 연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신뢰할 때 우리 삶의 격조가 얼마나 높아지는지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 세 명 이상을 모아 뜻을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확산하는 것 역시 사회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성공의 경험을 모으고 나누며 내부의 힘과 신뢰를 키우는 것이 시민사회의 자산이 된다.

김 교수는 이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요인들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줄 수 있다고 말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로를 연결하고 연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비대면의 시기, 우리의 연대와 협력은 어떤 모습일까

▲ 소금(박동염) 서울 성북청년시민회 활동가. 온라인 화면 갈무리.
▲ 소금(박동염) 서울 성북청년시민회 활동가. 온라인 화면 갈무리.

기조강연 후에는 사례발표가 이어지며 앞으로 시민사회의 연대와 협력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이디어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소금(박동염) 서울 성북청년시민회 활동가는 2명의 동료 활동가와 함께 시작한 '#갑자기_통장에_떡볶이가_입금됐다'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제목에서 떠올렸으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소소한 행위가 일상을 회복할 힘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소금 활동가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올해 초 프리랜서 강사인 친구와 맥주를 마시는데 코로나19로 교육 활동이 축소되고 일이 줄어들면서 월세를 못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무슨 일이라도 해보자 싶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소금 활동가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 함께 속해있는 활동가들과 만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갑자기_통장에_떡볶이가_입금됐다' 프로젝트의 콘셉트는 간단하다. 청년 활동가를 위한 조건 없는 후원 플랫폼. 플랫폼을 개설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기부 받은 총액을 신청자들에게 n분의 1로 나눠서 지급한다는 내용의 프로젝트로, 2주간(4월 12일~26일) 총 756만 원이 모금돼 해당 총액을 151명의 청년 활동가에게 지급했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신청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소금 활동가는 이에 대해 "지원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기존 복지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삶의 의지만으로도 응원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년들이 존재만으로 응원 받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프로젝트의 또 다른 특징은 참여자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생생한 후기를 공유하면서 후원도 쌍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한 점이다.

이처럼 '#갑자기_통장에_떡볶이가_입금됐다' 프로젝트가 보여준 것은 연결의 가능성이다. 소금 활동가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고 협력해야 하는지를 확인했다. 사회적인 문제에는 사회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게 선배 세대 때는 '상호부조'였고 우리가 발견한 것은 느슨한 관계에서 이어지는 '서로 돌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후원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연대와 협력을 나중에 또 이어갈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고, 그래서 아직 우리 사회가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 청년들의 연대가 새로운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 박정석 전주시자원봉사센터 센터장. 온라인 화면 갈무리.
▲ 박정석 전주시자원봉사센터 센터장. 온라인 화면 갈무리.

두 번째 사례 발표자로 나선 박정석 전주시자원봉사센터 센터장은 재난의 시대에 전주에서 이루어진 자원봉사와 시민사회 영역의 활동을 공유했다. 박 센터장은 "코로나19 이후 전주가 전국 최초로 착한 임대·집세·소비 운동을 시작하고, 재난기본소득을 시행했으며, 해고 없는 도시를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전주에서는 어떻게 이런 선도적인 사업들이 진행될 수 있었을까.

박 센터장은 "착한 임대·집세·소비 운동이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임차인, 임대인 모두가 호응한 이유를 찾자면 2016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주 한옥마을 상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했고, 시 당국뿐만 아니라 한옥마을 상인들을 중심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상생협약('함께 가게' 운동)을 맺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사회적 협력과 연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주에서는 확진자가 방문했던 음식점을 이용하고 화훼농가의 꽃, 지역농가의 농산물을 소비하는 등의 착한 소비 운동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전주시자원봉사센터는 급식 중단 등으로 폐기 위기에 놓인 계절농산물을 이용해서 김치 등의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함께 했다.

또한 전주가 전국 최초로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했는데, 이를 두고 박 센터장은 "지방정부가 시민들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과감한 결단을 통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선별적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해보자고 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했고 중앙정부의 전 국민 균등지급 방식 재난기본소득과 보완적으로 진행됐다"고 평했다. '해고 없는 도시'에 대해서는 "외환위기 등의 경험을 통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은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현재 1,000개 이상의 기업들이 해고 없는 도시, 고용유지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센터장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시민사회 플랫폼 역할에 대해 "전주시에는 지역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열린 마당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다양한 역량과 자원을 가진 자원봉사센터와 연대·협력 체계가 구축돼 있었다. 그래서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연대하고 협력하는 힘이 쉽게 배어들었던 것이다. 시민사회 플랫폼은 지역마다 특색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민사회 플랫폼이 활성화된다면 지역마다 발생할 수 있는 재난을 이겨낼 힘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 윤영숙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 온라인 화면 갈무리.
▲ 윤영숙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 온라인 화면 갈무리.

이어 윤영숙 아산시민사회단체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중국 우한에서 귀국하는 교민들의 수용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아산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월 정부는 당시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던 우한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송환해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에 격리수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 반발에 부딪혀 교민 수용 예정지가 번복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윤 집행위원장은 "시민사회 단체는 지역 주민들이 갖는 공포가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그 당시 우리 모두에게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코로나19가 공기로 전염되고 감염된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죽어간다는 등 진실과 낭설이 뒤섞인 여러 이야기들이 떠돌면서 공포가 극심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시민사회 단체는 주민들의 정서, 주민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공포에 우선 공감했다. 그 공감대 위에서 주민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과 구성원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정부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자 했고, 동시에 교민들에게 적대적인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그래서 시민사회 단체는 교민들이 도착하기 전날 '우한교민 환영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성명서를 시작으로 '위 아 아산(WE ARE ASAN)' 해시태그 운동 등 교민을 포용하는 메시지가 시민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윤 집행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강렬한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어떤 의견을 냈을 때 이것이 시민들에게는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될 수 있고 시민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이 지역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도 안전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또, 반대의 목소리가 클 때 내가 혼자가 아니고 공동의 연대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줬다"고 의의를 전했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시작한 이런 움직임은 곧 공공과 민간의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고 교민들은 무사히 체류 기간을 보내고 귀환했다.

이러한 아산의 사례에서 우리는 연대의 확장 및 지속을 위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형성된 관계 속에서 위기를 함께 극복한 경험을 가지게 됐다. 이에 윤 집행위원장은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치유가 되기도 하고 기적이 되기도 한다"며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2부에서는 종합토론을 진행하며 시민사회의 연대 방식과 지향점 등에 대해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윤영숙 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발생 초기 마스크 품절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자발적인 '마스크 안 사기' 운동이 일어났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러한 변화는 지금 사태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개개인에게 줬고, 개인이 사회와 구성원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라며 "이것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연대가 없다. 내가 더 가지면 안전성을 더 확보할 것 같지만, 사실 그게 아니고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데 사람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했던 현상이라고 본다. 시민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했다.

한편 '2020 강한시민사회 포럼'은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변화를 모색해야 하며 급변하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4차 포럼까지 진행됐으며 11월 6일 5차 포럼 '사회적 가치 사례-코로나 딜레마, 잊지 말아야 할 가치', 11월 26일 '종합정리 과제 도출' 포럼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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