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소비자협동조합 MEC 매각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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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소비자협동조합 MEC 매각에 관하여
  • 2020.10.19 15:54
  • by 히로타 야스유키(廣田 裕之)
MEC 로고.
MEC 로고.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 출범하여 전국 아웃도어 관련 소비자협동조합으로 활동해온 Mountain Equipment Coop (MEC)가 파산하여 미국 자본주의 기업에 매각되는 일로 캐나다 사회적경제 분야에 격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 상황에 대해 라이프인 편집부로부터 집필 의뢰를 받았다. 본인이 거주하는 스페인에는 많은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고 캐나다 현지에 있는 게 아니기에 MEC 상황에 대해 논하는 게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스페인 연대경제 현장을 아는 입장에서 주제넘지만 조금이나마 고찰해보고자 한다.

MEC는 1971년 벤쿠버에서 발족하여 단 5캐나다 달러(약 4,400원)만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어서, 500만 명의 조합원을 보유한 거대 조직이었다. (참고로 2020년 가을 현재 캐나다 추정인구 약 3,800만 명) 캐나다 주요 도시에 22개 점포를 두었으며 2019년 매출액은 4.62억 캐나다 달러(약 4,000억 원)를 기록했으나, 1,149만 달러 (약 100억 원)의 적자로 경영이 막다른 곳에 이르러 미국의 투자기업에 넘기게 되었다. (조합 자체는 매각이 불가능하므로 정확하게는 조합의 자산매각에 의한 적자 해소)
 

MEC 발족과 활동경과를 소개하는 영상 (영어)

확실히 스포츠용품 분야는 Amazon 등 대규모 자본기업과 치열한 경쟁에 놓여있어, 최근 몇 년 동안 이 조합은 마케팅 및 재무 전문가 등 '전문 경영인'을 이사로 영입하는 한편 조합원의 참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또 MEC가 출범한 50년 전 캐나다에는 아웃도어용품을 부담없이 살 수 있는 매장이 부족하여 미국까지 직접 구입하러 가면서, 국경을 넘을 때 관세를 내야 하는 문제 등이 있었다. 여기에서 마케팅 용어로는 니치산업(*역자 주-틈새시장)으로 아웃도어용품을 전문 취급할 소비자협동조합이 성립할 여지가 있었지만,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큰 자본주의 대기업과 경쟁에 놓여 가격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는 견해가 캐나다에서는 일반적인 듯하다.

소비자협동조합은 특성상 다른 협동조합보다 대규모인 경향이 있고 사회적경제 안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편, 규모가 커지면서 협동조합 운동에는 무관심하고 가격 할인만을 원하는 소비자가 조합원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조합원과 소비자 간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민주적 운영을 중시하여 굳이 규모를 확대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적인 운영을 다소 무시하며 규모의 경제에 의해 가격 인하를 노릴 것인가의 문제는 아마 세계 공통이겠지만, 이곳 스페인의 사례에서 몇 가지 배울만한 점을 기술해보고자 한다.

스페인, 특히 카탈루냐 지방은 연대경제 운동이 왕성하여, 그로 인해 각 협동조합 간에는 연대경제 운동의 동반자라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여러 비판을 이해하는 각종 시민사회 활동가나 지식인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에 대안으로 연대경제를 구축해 가자는 의식이 강하다. 이러한 반자본주의 또는 탈자본주의 정체성이 확고한 사회적 기반을 바탕으로, 현재는 자본주의 기업에 의존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가능하면 연대경제 관련 조직을 만들어 거기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의존을 조금이라도 줄여가자는 의식이 현재 스페인 연대경제의 원동력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재생가능 에너지 소비자협동조합인 솜어너르지어(SomEnergia)가 있다. 스페인도 한국처럼 대기업에서 전력사업을 과점하고 정부 보호 아래 원전 등 환경에 부하가 높은 발전방식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원전 반대 활동가 등에 의해 10년 전에 만들어진 게 이 SomEnergia이다. 카탈루냐 지방의 지로나 시내에 본사를 둔 이 조합은 현재 스페인 전국에서 6만 8천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했으며, 원전이나 전기요금 등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활동가들과 연대해가며 지금도 순조롭게 조합원 수를 늘리고 있다. 비슷한 예로 인터넷과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SomConnexió를 들 수 있다.
 

▲ 6만 8천 명 가까이 조합원을 보유한 신재생에너지 소비자협동조합 솜어너르지어(SomEnergia) 온라인 총회 동영상 (스페인어)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각 사회운동과 밀접하게 관련한 사회적경제 조직이 상호협력할 뿐만 아니라, 연대경제나 전환형 경제라는 틀보다도 큰 비전을 공유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영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품 안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유기농 쌀과 채소 구입에 관심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유기 농업 운동을 연대경제나 전환형 경제의 일부로 인식하여, 친환경 농가에 융자가 필요하면 윤리 은행에서 대출해주거나 친환경 농가들이 만든 농협의 웹사이트를 만들 때는 노동자협동조합에 의뢰하는 등 평소 연대경제나 전환형경제에 속한 다른 조직들과 관계를 구축해 놓아 동료 의식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카탈루냐의 연대경제 네트워크 XES(셰스)의 활동을 보면 XES 자체 활동으로 다양한 분야의 연대경제 단체가 모이므로, 직접 거래를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XES는 매년 10월 말 바르셀로나에서 연대경제 박람회를 개최하는데, 그 가맹단체들이 협력하여 운영한다. 또 다른 주요 활동으로는 Pam a Pam으로 불리는 연대경제 사례 매핑 프로젝트와 각 단체가 사회면이나 환경면에서 실제로 연대경제 이념에 따라 활동하는지 체크하는 사회적 가치 대차대조표, 그리고 연대경제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고찰해보는 썸머스쿨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중심으로 평소에도 다른 업종 간의 연대경제 관계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아져 동료 의식을 조성하는 것이 각 사업 성공에 한몫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바르셀로나의 연대 경제'(한국어 자막 판)

특히 지방에서 효과를 보는 방법으로 지산지소 형태 경제모델 모색과 통합을 들 수 있다. 어느 나라든 대도시가 번성하면 지방 도시와 농촌이 쇠퇴하는 주요 원인은 경제적인데 있는데 (대도시에 고용이 집중되는 한편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이렇게  대도시의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 판매망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지역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개발 수단으로 지역 내에서 충분히 수요가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자급자족 방식으로 전환하여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의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지산지소를 통해 글로벌 자본주의로부터 지역경제를 스스로 지키자는 움직임은 연대경제와 친화성이 높아, 한국의 지역 활성화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스페인 연대경제 운동에서 MEC를 바라봤을 때, 시작부터 사회 운동과 연계가 얕아 일반 자본주의 기업과 차별화에 실패한 게 조합 매각의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2013년 파산한 몬드라곤 그룹의 파고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기업과 동일 선상에서 겨루면 가격 경쟁력에서 자본주의 기업보다 불리하여 실패할 것이기에, 자본주의 기업 성격상 제공하기 어려운 부가가치, 구체적으로는 경영 참여를 제공하거나 각종 사회 운동과 연대함으로 그 차이를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이념에 공감하는 소비자 조합원을 다수 확보해야 하며, 스페인 SomEnergia의 성공으로부터 한국 사회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적경제를 그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정부의 각종 지원은 세계적으로 부러움을 살만큼 충실한 한편, 소속된 사람들이 사회 운동의 측면에서 실천하는 활동은 비교적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MEC처럼 자본주의 기업과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으나,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는 사회적경제 분야가 활로를 찾기 위해서 자본주의 경제가 제공하지 않는 가치, 특히 지역발전이나 각종 사회운동과 연계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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