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⑧] 코로나시대에 채식을 시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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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⑧] 코로나시대에 채식을 시작한다는 것
  • 2020.09.30 09:00
  • by 이미옥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이사)
08:28

코로나19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사회·경제적 충격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졌다. 보건의 문제를 넘어 소비 급감과 경기침체, 소득감소와 일자리 위기 등 사회·경제 전반의 심각한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분명 세계적 재앙이지만, 우리에겐 뜻밖의 선물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는 가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인식 틀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코로나19로 우리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빠르게 대안을 찾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교류하고 연대하며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꿔보자. 라이프인은 '언택트에서 온택트로', '개발에서 회복으로', '치료에서 치유로', '관심에서 참여로', '경쟁력에서 공존력으로' 등의 주제를 통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사회적 회복과 사회구성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보다 강력한 행동 의지를 가질 때 희망의 시그널을 놓치지 않고, 코로나19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채식을 시작했다. 100일 넘게 연속하여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지내고 있는데 육류, 계란, 유제품에 대해선 먹고 싶다는 욕구가 전혀 없다. 원래 해산물을 좋아해서인지 갈치조림, 낙지볶음 이런 건 최근 들어 조금 생각나서 동생과 일종의 룰을 정해 한 달에 한 번 해산물 먹는 날을 정했다. 이제 예전처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이랄까?

육식에 대한 나의 불편함은 공장식 축산이라는 믿기 어려운 환경과 거기서 사육되는 동물들의 모습 때문에 생겨났다. 커피 매니아로 지내면서 커피 농부들이 겪는 불공정한 조건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공정무역단체에서 활동을 해왔다. 과일과 채소부터 각종 식료품과 화장품, 의류를 구매할 때 자연스럽게 내용 성분을 먼저 살펴보고 어디서 생산된 것인지 확인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공정무역 커피를 재배하는 네팔, 르완다의 농가를 방문할 때 다양한 작물을 함께 재배하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축을 키우는 순환농업 방식은 높은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축의 분변을 비롯해 커피 열매를 가공하고 남은 껍질, 농가 주변에서 자라는 작물과 풀들이 유기재배를 위한 비료로 사용되고 사람들과 가축들도 그 안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방식이다. 반면 커피 단일재배를 하는 농장들은 넓은 지역에 줄 맞춰 커피나무들이 태양 아래 그대로 드러난 채 자라기 때문에 화학비료와 농약, 기계를 이용해 재배하고 수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내가 공장식 축산과 양식 어업에 대해 무심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동안 뭔가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 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올해 초 몇 년간 몸담고 있던 일을 그만두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나에게 적합하고 행복할까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그 동안 공정무역 마케터로 일하며 갖게 된 식품 관련 경험을 연결하면서도 나의 생활방식과 어울릴 만한 것으로 "비건푸드Vegan Food"를 떠올렸다. '그러려면 먼저 나 자신이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뀌어야 할 텐데 과연 할 수 있을까? 한번 실험을 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전 세계적인 유행을 할 줄 몰랐던 시기라서 다행히 그동안 가보고 싶던 베를린에 숙소를 정해 3개월간 천천히 하루하루 생활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이번 일주일만 비건으로 한번 살아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베를린은 독일 비건 인구의 10%가 사는 도시라서 그런지 비건 마크가 붙어있는 제품들이 정말 다양해서 수퍼마켓이나 식료품점에 가면 쉽게 구분이 가기 때문에 물건을 고르고 살펴보며 쇼핑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화장품은 물론 의류, 신발, 가방과 와인, 맥주까지 비건 마크를 달고 있어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제조과정이 어떤지 탐구해보고 관련 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기도 했다. 많은 기업들이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동물권리, 식물기반(Plant-based) 재료, 로컬푸드 등의 키워드로 활동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 독일의 다양한 비건 제품 ⓒ 이미옥
▲ 독일의 다양한 비건 제품 ⓒ 이미옥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주로 참고한다는 다큐멘터리와 책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정말 많은 정보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책 한 권, 다큐멘터리 한 편 다 보기도 전에 이미 육식을 즐겨 했던 얼마간의 마음이 저 멀리 한편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도 쉬운 취향이었던 건가? 그냥 단백질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골고루 먹어줘야 한다고 하니까, 각종 모임에서 선택하는 메뉴니까 하며 먹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로 즐겨 먹던 달걀, 요거트, 치즈 같은 것들도 두유, 코코넛밀크, 캐슈넛 등 식물재료 100%인 다양한 제품들로 바꿔서 먹다 보니 어느새 거의 먹지 않게 되었다. 콩, 밀, 버섯, 비트 등 식물재료로만 만든 햄버거 패티를 사서 구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입안에서의 풍미도 좋아 놀랐다. 

▲ 콩, 밀, 버섯, 비트 등 식물재료로만 만든 햄버거 패티 ⓒ 이미옥
▲ 콩, 밀, 버섯, 비트 등 식물재료로만 만든 햄버거 패티 ⓒ 이미옥
▲ 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입안에서의 풍미도 좋아 놀랐다.  ⓒ 이미옥
▲ 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입안에서의 풍미도 좋아 놀랐다.  ⓒ 이미옥

유엔식량농업기구 FAO가 2006년 발표한 보고서(Livestock's Long Shadow: environmental issues and options)에 따르면, 인류에 의해 발생되는 온실가스 18%를 전 세계 축산업이 배출한다. 매년 수백억 마리 동물들에 의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사료 생산과 목초지를 만들기 위한 삼림을 파괴하고, 지구 표면의 땅 30%와 세계 물 소비량의 30% 사용, 대기오염, 수질오염, 생물다양성 손실 등이 오늘날 인류가 발명해낸 축산업의 환경적인 영향들이다.

여기에 덧붙여 영화 <옥자>에도 등장하는 거대한 공장식 축산시설에 대한 윤리적 이슈와 위생 문제, 항생제와 각종 화학물질 사용문제 등이 존재한다. 또한 과도한 육식 위주의 식습관으로 인해 비만과 각종 만성질환이 늘어남에 따라 선진국들은 육류 소비를 줄이고 있는 반면,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육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조류독감, 아프리카 돼지열병, 광우병으로 살처분(殺處分)되는 동물들, 그런데도 우리 식탁에 고기는 끊임없이 공급된다. 이렇게까지 고기를 많이 먹을 일인가? 70억 인구가 먹을 고기와 생선을 만들어내기 위해 돌아가는 시스템이 이 정도 하면 100억 인구가 살아갈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까?

베를린에 가기 전 내가 알고 있는 독일은 소시지와 돈까스 '슈니첼', 훈제 족발 '슈바이네 학센'으로 유명한 육식의 나라였는데 알고 보니 그건 이미 옛날이야기였다. 1990년대 말부터 공장식 축산 관련한 책과 다큐멘터리가 나오면서 사회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더니 2017년 독일 전체 인구의 10%인 8백만 명이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소비자를 가진 독일에서 관련 제품들과 카페, 음식점들, 비건 투어 등이 생겨나고 비건 문화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최근 몇 년간 유럽의 '비건 혁명(USDA (2020), Germany is Leading a Vegalution - Vegan Revolution - in Europe)'을 이끌고 있다. 

채식 기반의 식단으로 바꾼다는 건 먹는 것의 변화 만을 의미하지 않는 듯하다. 환경운동가인 웬델 베리는 "음식을 먹는 것은 농업적 행위"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것을 먹을지 선택하는 순간 굉장히 복잡한 관계로 자연의 수많은 존재들과 그것을 재배하는 농부들, 유통하고 판매하는 모든 시스템과 연결된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강제적 휴식과 단절이 주는 의외성을 동반한 편안함을 느끼며 베를린 주택가를 따라 1시간 넘게 이어지는 숲길을 산책하는 건강함까지. 이 시기에 우연히 선택한 식단이 내가 가진 것과 소비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삶의 많은 것들을 다시 설계하도록 이끄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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