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⑤] 코로나 시대 예술, 생각의 근육이 단단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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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⑤] 코로나 시대 예술, 생각의 근육이 단단해지다
  • 2020.09.21 23:50
  • by 전윤서 기자
11:35

코로나19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사회·경제적 충격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졌다. 보건의 문제를 넘어 소비 급감과 경기침체, 소득감소와 일자리 위기 등 사회·경제 전반의 심각한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분명 세계적 재앙이지만, 우리에겐 뜻밖의 선물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는 가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인식 틀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코로나19로 우리 삶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빠르게 대안을 찾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교류하고 연대하며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나갈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꿔보자. 라이프인은 '언택트에서 온택트로', '개발에서 회복으로', '치료에서 치유로', '관심에서 참여로', '경쟁력에서 공존력으로' 등의 주제를 통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사례를 소개하고 사회적 회복과 사회구성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보다 강력한 행동 의지를 가질 때 희망의 시그널을 놓치지 않고, 코로나19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는 잠잠해졌고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였던 공연장은 활기를 잃었다. 전국의 국립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또한 무기한 휴관에 돌입했다. 상황은 한국을 벗어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이후 문을 닫은 브로드웨이의 극장들은 연말까지 공연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을 작곡을 맡아 뮤지컬의 거장으로 불리는 영국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는 "우리(공연예술)는 지금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있다"고 밝히면서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마비된 상태처럼 보여도 문화 예술 생태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 시기 문화예술의 잠시 멈춤은 단지 멈춤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신체를 낮추듯이 말이다. 

▲ John William Waterhouse "A Tale from Decameron"(1916). ⓒLady Lever Art Gallery
▲ John William Waterhouse "A Tale from Decameron"(1916). ⓒLady Lever Art Gallery

14세기에 창궐해 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인구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흑사병은 전염력과 치사율이 높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바이러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당시 유럽에서 상업, 금융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피해가 막심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모두가 혼란스러운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가 태동했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이탈리아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자가격리를 하러 나선 남녀는 무료한 하루를 달래기 위해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고 이를 엮은 소설이 바로 '데카메론'이다. '데카메론'은 이후 셰익스피어에게도 영감을 주었으며,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르네상스 대표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양정무 교수는 "흑사병을 이야기할 때 역설적으로 '르네상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흑사병은 결과적으로 유럽인을 엄격한 종교적인 삶에서 벗어나 개성과 이성의 세계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위협했던 바이러스가 인간중심으로 사고할 힘을 실어준 꼴이다.

▲ Marina Abramović "The Artist Is Present"(2010). ⓒMoMA
▲ Marina Abramović "The Artist Is Present"(2010). ⓒMoMA

예술은 재난의 시대를 충실히 기록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깊게 사유하기를 권한다. 학술지에 실린 '재난 시대 문화예술의 정동적 잠재성 : 공포와 혐오를 넘어 공감과 연대를 향하여(강부민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과정)'에 따르면 재난은 사회의 균열을 일으키면서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체계의 틈을 발견하게 하고 그것을 개선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때 문화예술은 사회 구조적 문제들을 감추거나 재난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피로감과 익숙함을 느끼게 하고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가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끔 하기도 한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2010년 모마(MoMA)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에서 테러와 같은 재난이 만연한 시대에 관객들과 연대하기 위해 "예술가가 여기 있다"는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은 관객과 아브라모비치가 나란히 마주 보며 진행됐다. 마주 앉은 관람객은 울음을 터트리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안을 받고 돌아갔다. 아브라모비치는 한 인터뷰에서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예술은 세상이 나아갈 길을 보여줄 수 있지만, 의식의 변화는 개인이 이루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렇듯 예술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개인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코로나 시대에도 예술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 나아가면서 또한 끊임없이 개인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을 선보일 공간은 현저히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예술가가 예술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없다면 자기만족에서 끝나버린다. 이태호 작가는 작업실 한쪽에 쌓여가는 작품들을 바라보다 새삼 실내에서만 작품을 관람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판화 작품을 들고나와 신촌, 광화문, 인사동 근처 거리에 직접 작품을 전시했다. 작가는 아트 인 컬쳐 칼럼을 통해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예술은 사람 간의 공감과 소통을 위하여 형식과 장소를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내 작업의 거리 진출도 그런 뜻을 지닌 실천이다"라고 밝혔다.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으려는 시도들도 계속되고 있다. 소셜벤처 필더필은 실력이 출중한 신진작가를 발견하면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기획 운영하는 문화기획 및 컨설팅 업체이다. 신다혜 대표는 "예술인들을 위한 '아프리카TV' 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온라인 공연을 통해서 예술가들이 작업을 이어나가고 시민들과 만나며 그 사이에서 후원을 할 수 있는 모델이다. 온라인 공연은 데이터 수집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조회 수나 댓글 반응을 수집해 수요를 기반으로 다음 공연을 기획할 수 있게 된다"라고 밝혔다. 위기의 시기,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가 큰 정부로 나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디지털·온라인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를 모색하던 예술가의 창작활동이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빠르게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2,700여 명의 예술가를 대상으로 148억 9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온라인 예술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이 추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Nam June Paik "Good Morning Mr.Orwell"(1984). 백남준은 서로 다른 공간의 예술가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정보통신 발달이 가져다주는 상호소통에 주목했다.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예견한 감시 사회와 같은 암울한 미래와 반대되는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
▲ Nam June Paik "Good Morning Mr.Orwell"(1984). 백남준은 서로 다른 공간의 예술가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정보통신 발달이 가져다주는 상호소통에 주목했다.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예견한 감시 사회와 같은 암울한 미래와 반대되는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

경희대 박신의 교수(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는 지난 7월 제1회 코로나19 예술 포럼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예술의 가치와 회복력에 대해 발제를 맡았다. 박 교수는 오프라인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제한적이지만 온라인은 제한 없이 활용, 확장이 가능하고 실시간 댓글, 조회 수처럼 이용자 중심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집, 일상, 지역, 가족이 재발견되면서 이를 SNS로 공유하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때 예술가의 역할은 조력자의 역할로 바뀔 것이라 언급했다. 또한 "예술제도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공공플랫폼, 온라인을 통한 펀드 기금, 예술인 복지 등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 함께했던 예술인소셜유니온 김상철 위원은 코로나로 인해 그간 탄탄해 보였던 예술가들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가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전의 지원제도들이 그저 생존하게 만드는 지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누군가는 예술인들을 위한 복지와 지원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드러난다. 한양대 행정학과 김정수 교수는 '경제 불황 시대의 예술정책'(2015년)이란 칼럼을 통해 "예술 뉴딜정책의 효과에는 새로이 창출된 일자리 수와 같이 가시적이고 계량화가 가능한 효과도 있지만, 비가시적, 비계량적, 비경제적 효과들도 있다"며 "예술에 대한 투자는 '아름다운 낭비'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적기업의 사회서비스 분야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는 더 큰 도약을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홍익대 예술경영학과 장웅조 교수는 "예술의 도구적 가치 즉, '예술을 하면 일자리가 생겨요', '치유의 효과가 있어요.', '정신적으로 좋아요' 등 설득을 필요로 하기보다 예술의 진정한 본원적 가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현재 시점에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왜 만들어졌는지, 소셜미션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하며,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지 집중할 시기이다"라고 밝혔다.

사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일이란 어렵다. 하지만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것, 예술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고민해 보는 것, 다른 방식으로 예술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는 것. 작은 실천과 생각의 근육들이 모여 더 큰 도약을 위한 기회를 만든다. 먼저 온 미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생각의 근육을 단련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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