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위한사경] 필요한 곳 어디든 아름다움이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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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위한사경] 필요한 곳 어디든 아름다움이 있도록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경재 대표 인터뷰
  • 2020.09.07 15:31
  • by 김정란 기자

그간의 기술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이었다. 풍요로운 삶이 가져온 만족스러움에, 우리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은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이 생각들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쓰레기 산, 플라스틱에 괴로운 해양생물들…지구가 더는 터전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을 봐주지 않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항목 13~15번(▲기후변화와 대응 ▲해양환경 보전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육상 생태계와 생물다양성 보전)은 그간 우리가 미뤄두었던 기후 변화에 대한 긴급조치, 해양, 육지 자원의 보존 노력 등을 담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할, 인간과 지구,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한 기술은 없을까? 더는 미룰 수 없는 생각들을, 앞서 실천하며 전진하고 있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있다. 라이프인이 지구를 위해 뛰고 있는 기업들을 만나 지속가능성과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편집자 주]

▲ 이경재 대표가 친환경 드레스를 제작하고 있다. ⓒ대지를위한바느질
▲ 이경재 대표가 친환경 드레스를 제작하고 있다. ⓒ대지를위한바느질

성북구의 한 단독주택. 대문 한켠에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라는 나무 현판이 아니었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갈 뻔했다. 우리가 알던 예식장과는 너무도 다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국 영화 속 가든 웨딩에서 본 듯한 잘 관리된  초록 잔디밭 한켠에 서양식 정자, 흰색 가제보가 서 있다. 그 사이로 난 돌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아, 이곳에서 결혼을 하면 이렇게 걷게 되겠구나" 싶다. 생애 가장 기쁜 순간을 준비하는 예비부부들이 왜 이곳에서의 결혼을 꿈꾸는지 알 것도 같다. 국내 스몰웨딩의 선구자인 이경재 대표를 만나 친환경 웨딩과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친환경 항균 유니폼 사업에 대해 들어보았다.

■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지나간 '이색' 웨딩이 아니다

워너비스타 이효리의 스몰웨딩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2008년 설립됐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스몰웨딩을 진행해오고 있다. 2010년 환경분야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1세대 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2020년이지만, 웨딩업체라니. 관광업계 등과 함께 올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계 중 하나가 아닌가. 이 대표는 "2월쯤 봄이나 여름으로 연기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니 가을 연기 가능 문의가 왔다"고 웃으면서도 "최근에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결혼식 인원 제한이 생기면서 스몰웨딩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긴 것 같다. 그런 분들의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환경을 위한 스몰웨딩, 친환경 드레스 분야에 앞장서 왔던 이 대표는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라도 작은 웨딩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은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이 꿈꾸는 결혼 중 하나로 자리잡은 스몰웨딩이지만, 처음 사업을 할 때만 해도 국내에서 스몰웨딩에 대한 인지도는 아주 낮았다. 신랑신부가 원해도 부모님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표는 "첫 번째로는 결혼식이 초라해 보일까 봐, 두 번째로는 사연있는 결혼처럼 보일까 봐 스몰웨딩을 조심스러워하시더라"며 웃었다. 스몰웨딩에 대한 설명회 등을 통해 부모님을 설득해 실제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사실 내가 생각했던 진짜 결혼식은 이런 거였던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생겼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스몰웨딩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의복과 적정량의 음식을 사용하고, 정말 가까운 사람만 초대하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초라해서는 안 된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디자이너가 만든 친환경 소재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사업지가 위치한 성북동 인근의 전통있는 맛집에서, 그 집의 가장 유명한 메뉴 한 가지씩을 받아 음식을 마련한다. 비빔밥, 전, 김치 등은 장수마을 등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신 것을 공수했다. 마을의 맛집과, 할머니들의 축복이 담긴 따뜻한 음식과 정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치르는 의미있는 웨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음식 대신 답례품을 준비하고 있다. 답례품은 사회적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마련했고, 앞으로도 이 부분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더 연구해나갈 계획이다. 지구를 위한 사경에 소개된 바 있는 '스페이스선'의 친환경 비누, 지속가능한 캐시미어를 판매하는 르케시미어의  스카프, 리벨롭이 만든 친환경물병과 세척기 세트 등도 답례품으로 제안해 신랑신부와 가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의사, 환자 가운. ⓒ대지를위한바느질
▲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의사, 환자 가운. ⓒ대지를위한바느질

■ 더 많은 곳에서 디자인을 만나도록

우리에겐 스몰웨딩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친환경 유니폼 사업 부문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그린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시작하기 전에 원래 강원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블로그를 통한 개인 의뢰 등으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펜션 사업하면서 알게 된 분 중 병원 관계자가 있었는데 2007년 무렵 우연히 병원복 디자인을 제안하시면서 이 부분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사명이 된 것도 이 일의 세금계산서를 떼주기 위해서였다. "사업자등록을 하러 갔는데 기업명을 적게 돼 있더라. 생각도 못 하고 갔던 길이라 내 첫 개인전 제목인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적어 냈다." 어쩌면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정식 시작은 유니폼과 함께였다.

첫 병원복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면서, 이 대표는 "반성부터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복을 살펴보니 디자이너들이 이쪽에 너무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 드레스, 근사한 캣워크만 관심 갖지 말고, 꼭 필요한 것에 디자인이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누구나 언제 입게 될지 모르는 병원복, 멀쩡한 사람이 입어도 환자처럼 보이는 병원복이 아니라, 환자가 입어도 덜 무력하게 느끼는 환자복, 일하다 친구를 만나도 덜 민망한 의료진 의상을 만드는 것이 이 대표의 바람이었다. 

이 대표는 전공을 살려 병원에 친환경 병원복을 제안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도 더 열악하던 때였다. 8번의 프리젠테이션 끝에 친환경 병원복을 납품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국내에는 디자인이 가미된 친환경 병원복에 대한 사례가 없었던 탓에 어려움이 컸던 사업이다. "환자의 안전이 중요한 병원 특성상, 이전에 이런 옷을 도입한 사례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알러지 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꼭 필요한 곳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글로벌로 관심을 돌렸다. 해외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어낸다면 국내 병원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 레퍼런스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해 인천공항공사와 함께일하는재단이 추진한 '가치가세' 사업에 선정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 사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다양한 원단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어 사업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런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원단은 버석버석한 병원복 특유의 질감을 벗어나 있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 제작하는 병원복용 원단은 100번 정도 세탁하더라도 유지되는 항균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번 유니폼 개발에는 세제 개발도 함께해볼 계획이다. "첫 병원복을 납품할 때 130도 고열로 삶는다는 것을 고려해 테스트를 완료하고 납품했는데, 색이 다 빠졌다는 연락이 왔다. 세탁업체를 찾아 연락해보니 락스보다 10배 이상 독한 공업용 세제를 쓰고 옷이 반짝반짝해 보이도록 형광증백제까지 입히고 있었다"며 어이없었던 경험을 들려줬다. 세탁까지 신경쓰지 않으면 가뜩이나 면역력이 약한 환자, 혹은 의료진에게 병원복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중성세제만으로 오염물을 제거할 수 있도록 세제 개발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해외 사업을 준비하면서 오히려 참고할만한 사례가 없어 힘들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은 그래도 그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한다. 이 대표는 "아마존 등 온라인마켓을 통해 병원복을 판매해 성공한 사례가 있더라"며 소매로 병원복을 판매할 수 있다는 희망도 찾아냈다. 그는 "원단 생산 퀄리티가 높은 국내 공장과의 생산 협업과 함께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 가격경쟁력을 가지면서 해당 국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생산 라인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제작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게 당연하다. "잠잘 때 해외 온라인마켓 입점 성공 사례 등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 이어폰을 꽂고 들으면서 잔다"고 할 정도다.

▲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 치러지는 결혼식 모습. ⓒ대지를위한바느질
▲ 대지를 위한 바느질에서 치러지는 결혼식 모습. ⓒ대지를위한바느질

■ 피드백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접점 많아졌으면

사회적경제나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미미할 때부터 사회적기업가였던 그에게, 앞으로의 바람에 관해 물어봤다.

"사회적기업 제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물건을 팔아주는 유통망보다는 더 많은 고객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마켓에서의 피드백이 있어야 제품이나 서비스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만의 유통망에서 만족하다보면 그로 인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제대로된 가격을 받기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선택하면서 하향평준화될 위험도 적지 않다. 사회적경제 전반의 성장에 오히려 저해 요소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최근 영리 기업들이 기술 지원 등을 통해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를 돕는 사례들도 들었다. 그런 부분도 사회적경제 발전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사회적기업을 앞으로 내세우지 않고, 하다 보면 우리의 뜻을 알게 되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에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나서, 우리의 역할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차원"이라고 했다.

그의 뜻이 널리 펼쳐지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 가고, 아무 생각 없이 예식장에 가도, 언제나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그런 세상이 빨리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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