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누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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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누운 밤
  • 2018.02.07 18:43
  • by 양영희 시민기자

 어떤 장면은 머릿속 그림만으로도 따뜻하다.
동생들과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까지 나눴던 이야기들, 누운 채로 손가락으로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 이야기를 만들었던 순간들, 바스락거리는 바람 소리에도 귀신이다! 소리치며 이불 속으로 숨었던 이야기들, 아침이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한 우리를 부지깽이 들고 쫓아오던 엄마를 피해 도망갔던 이야기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잠을 자는 습관을 오래 버리지 못했다. 그 습관은 어린 시절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과 부모님이 한 이불을 덮고 자던 때에 생겼다. 사적 공간이 전혀 없는 그 시절 스스로 어두운 공간을 만드는 것 외엔 나만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조금만 방심하면 이불은 어디론가 끌려가 몸이 드러났고, 난 이불을 꼭 쥐고 몸이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게 자느라 밤새 전투적 자세를 취했었다. 심지어 이불을 몸에 감아 둘둘 말고 자는 습관까지 생겼고 아직도 잠이 들면 난 어린 시절 모습이 돼버리곤 한다. 그 후 오래, 내 소원은 내방을 갖는 것이었다. 시골에 집을 두 번이나 짓게 된 사연은 그런 어린 시절의 간절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소원을 이뤄 나만의 공간을 차지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다정한 온기를 아쉬워할 때가 있다.

나란히 누워 위로받는 시간을 보냈다.  (사진 픽사베이)

 며칠 전 아주 친한 후배 교사들과 어린 시절처럼 나란히 누워 밤을 보냈다. 장롱의 이불을 있는 대로 꺼내 베개를 나란히 놓고 보니 어린 시절 나의 방이 생각났다. 그냥 그런 풍경만으로도 후배들이 정답게 느껴졌다. 카톡 방에선 늘 ‘보고 싶다. 같이 여행가 자’란 말이 무성하지만, 학교도 사는 곳도 가깝지 않고 다들 사는 일들이 바빠 어렵게 잡은 날이었다.

 몇 년 전 갑상선 암 수술을 받은 A는 버스 타고 재래시장에 들러 함께 해 먹을 찬거리를 사 왔다. 그때 A는 학급의 아이들이 학교폭력으로 다투는 일이 있었고 오랫동안 양쪽의 부모들로부터 놓여나지 못했었다. 그 후유증이었을까? 그녀는 입원했고 수술을 받았으며 많이 기운이 빠져 지낸다. 그녀는 3년을 더 다닐지 5년을 버틸지 고민하며 보내는 중이다. ‘꼬막, 두부, 굴, 무말랭이무침, 우렁이…….’ A가 전통시장에서 사 온 것들은 싱싱했다. 꼬막과 굴은 겨울 향을 담고 있었다. A와 난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여자들끼리 음식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서로 좀 더 자신 있는 것들을 요리하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 음식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할 후배들을 생각하며 상을 차렸다.

 얼마 후 다른 후배 둘이 찬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J는 한 달 전 자궁 수술을 해서 아직 회복 중이다. 홀로 방에만 있던 그녀가 모처럼 외출을 했다. J는 고등학교에 근무 하는데 지금은 병가중이고 곧 자율휴직에 들어간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너무나 심한 상처를 받아 정신과 상담을 오래 받았었다. 치유되지 못한 아픔은 자꾸만 학교 밖으로 시선을 향하게 한다. 그녀가 얼마나 더 학교에 머물 수 있을지 우린 아무도 모른다.

 H는 작년에 무급 자율휴직을 하고 일 년 내내 한국을 떠나 있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마음을 비우고 평화를 채워왔다고 했다. 여행 중엔 행복해 보였던 그녀가 학교 복귀를 앞두고 다시 심란해 하는 게 보인다.

 우린 정말 오랜만에 마주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었다. 밖에서 사먹지 않고 집에서 해먹기로 한 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꽃은 식사가 끝나도 계속됐다. 우린 잠자리를 펴고 누워서도 도란도란 정을 나눴다. 나란히 누운 삶의 무게들도 이 순간만은 가볍게 느껴졌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은 잠시 고통을 들어 올려 분해시킬 수도 있음을 느낀다. 토닥토닥, 상처들도 나란히 누워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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