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남북을 잇다 ④] 평양의 협동조합 경험 및 사회적경제의 적용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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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남북을 잇다 ④] 평양의 협동조합 경험 및 사회적경제의 적용가능성
  • 2020.06.11 09:00
  • by 이찬우(테이쿄대학 교수)

사회적 경제라는 키워드로 남과 북이 경제협력을 해 보자는 제안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낯선 주장이다.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은 작년 9월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심포지움'과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이 과정은 발표자들이 깊은 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게 만들고, 남북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정리해 책으로 담아낼 수 있게 했다. 하나누리와 라이프인은 7주 동안 진행될 연재를 통해 출간 예정인 '사회적 경제, 남북을 잇다(맑은나루)'의 주요 핵심 메시지를 공유한다. [편집자 주] 

 

해방 후 북한의 경제체제는 개인소유와 협동 소유 그리고 국가 소유를 모두 인정하는 혼합경제체제로부터 시작하였다. 먼저 중요산업시설을 국유화하는 정책이 실시되었고, 1950년대까지 개인 상공인의 기업활동(개인 경리)이 보장되었으며 이를 가능한 집단화하여 협동조합화하였다. 농업 분야의 협동화에 있어서도 해방 후 토지개혁실시로 자기 땅을 갖게 된 농민들이 1950년대에 노력 협조반 방식, 토지출자 후 공동경리와 출자몫 배분방식, 생산수단통합과 노동 분배 방식 등을 통해 농업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북한에서 소위 사회적경제라 부를 수 있는 경제영역에 대한 선행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본고는 북한의 협동조합 또는 소비조합이 사회적경제로서 기능할 수 있었고 현재도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평양의 협동조합 경험 : 사회주의경제에 편입된 사회적경제 

<소비조합 시대>

해방 직후 시기인 1945년에서 47년까지 북한지역에서는 협동조합이 자생적으로 아래로부터 조직되기 시작하였는데, 임시인민위원회나 당조직이 협동조합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면서 위로부터 조직하는 방식으로 대중조직화하는 형태를 띠었다. 평양시 협동조합, 평양철도 협동조합, 평남광산 협동조합, 진남포 협동조합, 평안남도 협동조합연맹, 평안북도 협동조합연맹 등이 그 사례이다. 이 협동조합들이 1946년 들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의해 소비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고 지역별 조직으로 개편된다. 이에 따라 평양에서도 협동조합이 소비조합으로 개편되었다. "평양시 협동조합"은  "평양시소비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개별 협동조합을 전국적으로 통합하여 소비조합으로 개편하도록 한 데는 1946년에 도시지역에 부족한 식량을 농촌 지역으로부터 수매 공급하고 대신 도시지역의 일용품, 공업품(비료) 등을 농촌 지역에 공급하기 위한 상업망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중간상인에 의한 매점매석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여 도시 서민의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비조합을 국가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조합원 (도시노동자와 농민)의 자발성을 해치는 모습이 되었다. 

1947년 이후 북한의 소비조합 사업의 키워드는 [근로대중을 위한 조직]이었다. 이를 위한 사업개혁과 조합원 대회를 통한 새 중앙조직 구성 등 조직체계 정비가 진행되었다. 상향식 대중적 조직체계로 재편되면서 1947년 11월에 각 회원 조합의 직접선거를 통해 지도기관인 '북조선소비조합 중앙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시기부터 북한의 협동조합은 "자원성의 원칙"이라는 개념이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해서 북조선 소비조합 중앙위원회가 결성된 후 소비조합은 자체의 수매사업과 판매사업을 통한 상품교류사업을 중심으로 전개하면서 1948년 말에는 소비조합원이 520만 명으로 북한인구의 절반, 성인 인구의 대부분이 참여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바야흐로 북한은 소비조합 전성시대가 되었는데, 조합원 구성은 노동자 10.5%, 농민 69.7%, 사무원 6.2%, 수공업자 4.7%, 기타 18.9%였다. 농민이 소비조합원 구성의 약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특징이었다. 

한편 소비조합은 사업의 새로운 방안으로 산하에 생산기업소, 생산합작사 등을 만들어 직접 생산한 상품을 조합원에게 공급하는 체계도 갖추었다. 식료품・일용품・섬유・금속・건재 등의 생산, 양복・구두・시계・자전거・기계류의 수리나 세탁소와 간판점, 방앗간, 제분소, 이발, 목욕탕, 사진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 평양시소비조합제1백화점 ⓒ 노동신문(1948년 12월 4일)
▲ 평양시소비조합제1백화점 ⓒ 노동신문(1948년 12월 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북한 정부는 소비조합을 농촌 중심의 소비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한다. 농촌에 있는 국가 상점 및 식당들은 농촌 소비(협동)조합에, 도시의 소비조합이 운영하는 상점과 식당들은 상업성에 각각 이관하였다. 평양시 소비조합도 폐쇄되고 대신 상업성이 운영하는 도매소가 설치되었다.

한편으로 소비조합이 농촌 중심으로 변화되고 농촌의 리 단위 협동조합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촌소비조합도 리 단위의 농촌소비조합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그를 성원으로 하여 "소비조합 군 련맹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1957년 2월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당시 185만8천여 명의 소비조합원을 대표하는 조선소비조합 제3차 대회가 개최되었다. 1958년은 북한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성립되는 시기로서, 농촌소비조합의 상업망과 수매사업을 해당 인민위원회에 이관하고 소비조합 중앙연맹이 경영하던 시설은 상업성에 이관되었다. 그리고 리 단위의 농촌소비조합이 농업협동조합에 통합되어 "협동농장 직매소"로 개편되는 과정을 거쳐, 농업협동조합이 생산에서 분배, 교환 및 소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활동을 유일하게 담당하는 형태로 귀결되었다.

다만, 소비조합중앙연맹조직은 1990년대까지도 기능을 하는데 주로 소련 등 사회주의권과 소비품 무역을 위한 무역협정 체결 또는 상호 방문 등의 활동을 하였다.

평양에서 1953년에 소비조합이 해체된 후 소비조합이 담당하던 판매상점은 상업성이, 수매사업은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담당하고 각 구역별로 수매상점이 조직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적해야 할 것은 주민들의 자주적인 협동으로 결성되는 소비조합이 북한에서는 새 국가 건설과정에서 국가의 지원과 당의 지도가 곁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가와 당의 역할이 [위에서 지시]하고 내려 먹이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조합의 활동이 위를 쳐다보고 대중 기층에 근거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에서 농촌으로, 리 기층단위 소비조합 결성으로 변화하면서 결국에는 리 농업협동조합에 통합되는 과정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북한에서 당의 지도가 [대중노선]의 관점에서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었음이 적어도 1950년대까지의 북한 사회 시스템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평양의 소비조합 경험은 1953년 정도에서 종결하지만, 농촌과의 연결고리가 있는 도시구역엔 소비조합이 지속되기도 하였고 도시주민들의 자발적인 협동은 주로 생산협동조합 쪽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생산협동조합 시대>

생산 부문에서 협동조합이 처음 생긴 것은 1947년 8월에 결성된 [조선생산협동조합]이 효시이다. 결성 당시 28개 생산협동조합이 있었는데 품목별로는 식료품, 직물, 편직, 고무제품, 목공, 농기구, 기계, 공예품 등 지방원료 원천에 입각한 품목의 생산협동조합이 활동하였다. 1950년 3월에 노동당의 방침에 따라 소비조합 산하의 생산합작사가 분리되어 생산협동조합으로 재편되었다. 그래서 1952년이 되면 20명 이상 생산협동조합 511개, 2만8백 명 사원이 조선생산협동조합에 망라되었다. 조선생산협동조합 제1차 중앙대회가 1952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되어 각도, 시, 군 연맹을 구성하고 평양에 중앙연맹위원회를 두게 되었다. 

평양의 생산협동조합 활동을 보면, 평양고무제품생산협동조합, 평양공예제품생산협동조합, 평양편직생산협동조합, 평양섬유생산협동조합, 평양일용품생산협동조합, 평양금속생산협동조합 등이 지방원료를 활용한 생활용품을 주로 생산하였다.

조선생산협동조합은 1954년에 제2차 대회를 거쳐 1956년 10월에 제3차 대회를 개최하여 "가정용품과 일용 필수품 생산 조합을 급속히 확장하며 민족적 공예품, 아동 완구와 그리고 폐품을 이용하여 필수품을 생산하는 조합들을 광범히 조직함과 동시에 편의조합 대열을 확장하여 인민들의 편의를 적극 도모하며 상공업자들의 생산판매협동조합의 조직 확대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1958년의 제4차 대회에서는 사회주의화 실현에 따라 생산협동조합에 대한 지도사업을 경공업성과 각도 인민위원회에 이관하는 것을 결정하고, 각급 연맹기관을 해산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로서 생산협동조합의 중앙연맹이 해산되고 경공업성, 지방공업성과 각 인민위원회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 전국지방산업 및 생산협동조합열성자대회 ⓒ  노동신문(1957년 10월 13일)
▲ 전국지방산업 및 생산협동조합열성자대회 ⓒ 노동신문(1957년 10월 13일)

그런데 1980년대 이후 특히 1984년 8·3 인민소비품생산운동 개시이후에는 경공업제품 생산과 생산협동조합이 결합하면서 생산협동조합이 경공업 생산을 위주로 협동소유에 기반한 사업활동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8·3인민소비품생산단위로는 각 기관, 공장, 기업소, 생산협동조합, 가내작업반, 부업반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어 각 조직이 공장의 부산물 등을 원료로 생활소비품을 생산하여 직매점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평양의 생산협동조합의 주류는 구역별 가내생산협동조합이고 이들에 대한 지도체계는 평양시인민위원회지방공업관리국이다.

이상으로 평양의 협동조합 경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북한은 정부 수립 초기부터 협동조합을 사회주의적 개조를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설정하고 인민의 민주적 경제활동을 보장하면서 이를 국유경리로 전환시켜갔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중후반에 개인경리를 해체하고 사회주의화하는 과정은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협동조합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지금도 협동경리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 협동경리를 북한은 사회주의적 경리라고 부르지만, "사회적 경제"의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경제에 대한 사회적경제 적용 가능성

2000년대 이후 북한은 경제계획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또한 아래 단위로 분권화하면서 기업의 경영상 자율성을 확대하고, 농업관리제도를 개선하며, 소비품 시장 양성화 등과 같은 개선정책을 추진했다. 북한이 추진해온 경제정책은 시장경제로 근본적인 전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기능을 계획경제의 보완 형태로 활용하면서, 계획경제를 명령형에서 지도형으로 탈바꿈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국가기능이 충분하지 않은 때에 시장기능과 함께 협동경리 기능이 경공업 즉 생활소비품 생산과 유통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점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협동경리가 건국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고 이것이 북한의 경제자생력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북한의 경제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이유 중에는 시장기능의 활성화와 함께 동시에 시장화라는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북한의 '사회적경제' 기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에 협동조합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이러한 협동경리 방식의 경제 현상들을 통해 북한경제를 '사회적 경제'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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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테이쿄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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