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한 원산을 바라보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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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원산을 바라보다(下)
  • 2020.06.10 09:00
  • by 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 (좌측)원산 앞바다 SLBM 시험발사 ⓒ 노동신문 (2019년 10월 3일) (우측)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 노동신문 (2019년 4월 6일)
▲ (좌측)원산 앞바다 SLBM 시험발사 ⓒ 노동신문 (2019년 10월 3일) (우측)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 노동신문 (2019년 4월 6일)

<원산의 두마리 토끼 : 군사기지와 갈마 해안 관광지구>

5년 전인 2015년 3월 필자는 중국 요녕성 심양에서 열린 [조선 원산-금강산 지역개발 계획 설명회]에 참석했다. 북한이 2013년 3월 노동당중앙위원회전원회의에서 원산을 관광지구로 개발할 것을 결정한 이후 2014년 9월 대련에 이어 심양에서 설명회를 개최한 거였다.  북한 내각의 대외경제성 산하에 조선원산지구개발총회사가 꾸려지고 해당 간부들이 직접 파워포인트 설명자료를 가지고 설명하는 모습이 이젠 더 새롭지 않은 시대였다. 이때 만난 개발총회사 총사장은 대외경제성 국장이기도 했는데 대련에서는 남한기업가들과 활발히 접촉하고 투자요청도 하더니 심양에서는 한국에서 온 참석자들과의 약속된 면담을 거부해서, 방침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관료들은 상부의 방침에 따른다. 관료들이 기업 간부도 하면 기업의 정책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수시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남한과 관계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13년의 당중앙위 3월 전원회의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이 결정된 회의로 유명하다. 그 때 원산지구와 칠보산지구 등에 관광지구를 건설하고 각 지방에 자체의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를 설립할 것을 결정하여 바야흐로 김정은 시대의 성격을 집약한 회의였다고 할 수 있다. 핵도 갖고 경제도 발전시키자는 병진노선은 2018년 4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집중"노선으로 바뀌고, 2020년에는 핵무력을 가지면서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과의 관계 변화에 따른 "맞춤 대응"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핵 무력과 경제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노선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원산에는 조선인민군 해군 제1전대 기지와 전략군의 미사일 기지가 있고 또한 갈마 해안 관광 지구가 함께 있다. 원산에서 미사일은 수시로 동해를 향해 시험발사되었고 갈마반도 명사십리 해안리조트 시설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원산은 두마리 토끼를 잡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석이조 다시 말해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것은 연계된 활동이 결과적으로 두 성과를 내는 것인데, 경제건설과 핵 무력건설이 연계된 활동인지에 대해선 외부세계에서 비판이 있었다. 연계된 것이 아니라 모순된(트레이드 오프 Trade Off) 관계이니, 경제건설에 성공하려면 핵 무력을 포기하라고 말이다. 북한은 이에 대해 "아니다"라며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이 맞을까.

<원산의 세 가지 고리 : ①안전보장, ②국제교류, ③균형발전>

원산은 140년 전에 세계를 향해 열렸고 원산 사람들은 스스로 근대문명을 경험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곤란 속에서도 세계를 향한 원산이다. 이러한 원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명하는 데는 세 가지 고리가 유용하다. 안전보장과 국제교류 그리고 균형 발전이라는 고리다.

▲ "세계를 향한 원산"을 설명하는 세가지 고리 [이미지=필자 작성]
▲ "세계를 향한 원산"을 설명하는 세가지 고리 [이미지=필자 작성]

① 안전보장 : 일·러·중·미 주변 4국이 모두 관심 가진 원산

원산은 외세의 침탈경로였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갈마반도의 갈마공항은 일제시대에는 1920년대에 비행장이 건설되었고 1940년 11월에 창설한 구 일본해군 원산항공대의 항공기지로 사용되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때에 전투기 출격과 훈련소로 쓰였다. 원산은 해방 후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몸서리치게 경험했다. 

▲ 구 일본해군 원산항공대
▲ 구 일본해군 원산항공대. 공개사료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원산을 강력한 방어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북한의 해군과 공군 기지가 원산에 들어섰다. "원산폭격"으로 폐허가 된 원산항과 갈마비행장이 복구되었고 군용비행장이 있는 갈마반도는 오랫동안 군사보호구역이었다. 소련(러시아)의 태평양함대는 원산에 수시로 기항하였고 중국인민해방군 해군도 1996년과 2011년 원산항에 기항하여 군사적 연대를 과시하곤 하였다. 중국해군의 동해 진출은 한·미·일 관련국에 파장을 일으켰다. 

▲ 소련 태평양함대를 환영하는 원산시군중대회 (카트섹션으로 표시한 러시아어 ДРУЖБА(드루쥬바)는 "우호"의 의미) ⓒ 노동신문(1985년 8월 15일)
▲ 소련 태평양함대를 환영하는 원산시군중대회 (카트섹션으로 표시한 러시아어 ДРУЖБА(드루쥬바)는 "우호"의 의미) ⓒ 노동신문(1985년 8월 15일)
▲ 원산항에 입항하는 중국 군함, 텐중(田中) 해군제독의 조선인민군 해군 사열 ⓒ 신화사(2011년 8월 4일)
▲ 원산항에 입항하는 중국 군함, 텐중(田中) 해군제독의 조선인민군 해군 사열 ⓒ 신화사(2011년 8월 4일)

북한의 군사기지인 원산의 인상을 전 세계에 깊이 남긴 사건은 1968년 1월에 원산 앞바다에서 미군의 정보수집함(북한은 무장간첩선으로 부름) 푸에블로호를 북한 해군 (어뢰정 4척과 구축함 2척)이 추격하여 붙잡은 사건이었다. 

▲ 체포되어 원산으로 들어오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 ⓒ 노동신문(1968년 6월 24일)
▲ 체포되어 원산으로 들어오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 ⓒ 노동신문(1968년 6월 24일)

이 시기는 북한의 비정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하려다 미수에 그친 "1·21 사태" 직후였기 때문에 한반도는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은 미국에 승무원송환 협상을 제기하면서도 전쟁을 각오했다. 북한의 대공포가 원산시내와 복망산, 장덕산 등 인근 고지대에 총집결했다. 남한은 이미 "1·21 사태"로 전군 비상총출동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미국도 전쟁을 검토했다. 미 국방부 기밀문건(2014년 공개)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에 핵 공격 시나리오까지 검토했다. "자유의 투하(Freedom Drop)"라는 시나리오로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의 3배 파괴력을 가진 핵폭탄을 사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남에서 전쟁 중인 터에 한반도에서 동시에 전쟁을 벌이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협상을 선택했다. 사건 발생 때까지 백악관도 그 존재를 몰랐다는 푸에블로호에 있는 1톤이 넘는 기밀서류와 암호장비, 그리고 최정예 30명 통신감청요원들이 북한에 억류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은 비록 협상을 위해서이긴 했지만 북한을 국가로 대하고 판문점에서 "정부 간 회담"을 29차례나 열었다. 이 북미 간 협상은 비밀로 진행되었고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 그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월남파병도 철수하겠다고 반발하는 박정희 정부에게 미국은 1억 달러 군사원조 제공으로 무마했다. 

북미 간 협상에서 북한은 나포 당시 푸에블로호가 북한 원산 앞바다 영해에 있었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공해상에서 북한해군에 피랍되었다고 주장했다. 긴 협상 끝에 미국은 1968년 12월 23일, "영해 침범 인정과 사과, 그리고 향후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북한과 미국의 대결은 북한의 외교적 승리로 끝났다.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원산에 묶어둔채 미해병 유해 1구와 82명 승무원 전원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하였다. 미국은 사과문에 서명하기 전에 "모든 사실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해 체면을 유지했고 풀려나온 승무원들은 북한의 강압에 의한 자백이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푸에블로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미소대립의 냉전 질서하에서 소련의 위성국가로만 여겼던 북한에 대해 비로소 진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원산 앞바다에 정박해있던 푸에블로호는 1995년에 처음 공개된 후,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1999 년초에 원산에서 남해를 거쳐 서해를 통해 평양의 대동강으로 옮겨져 10월부터 "선군정치 시대의 반미교양 사업"의 일환으로 일반공개되었다. 2013년 7월부터는 개축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류경호텔의 동쪽, 보통강가)에 전시되고 있다. 운반과정을 미국이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푸에블로호와 같은 크기의 목조 모형을 만들어 위장해놓고 옮겼다고도 한다. 중국해군이 협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인은 안된다. 푸에블로호는 외국에 유일하게 나포 상태에 있는 미 해군의 함정으로 지금도 기록되어있다. 

원산을 공세적인 군사기지로 인상을 남긴 것은 미사일 발사 실험이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함과 동시에 원산에서 단거리 미사일 실험 발사를 하였다. 이후 2014년, 2017년에 중거리 미사일, 2019년 대구경 방사포 실험발사 등이 연이어 있었다. 원산 앞바다에서는 2019년 10월에 해수면 아래서 SLBM(잠수함탄도미사일 북극성-3형) 시험 발사를 하였다. 

▲원산 앞바다 SLBM 시험발사 ⓒ 노동신문(2019년 10월 3일)
▲원산 앞바다 SLBM 시험발사 ⓒ 노동신문(2019년 10월 3일)

원산이 침탈의 입구로부터 군사기지로 전환된 것을 살펴보았는데 이 부분에서 북한은 "공세적 방어" 전략에 중점을 두어왔고 일정하게 기술적,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방어력은 외교협상을 위한 수단으로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보는 리얼리즘(현실주의) 관점이다. 원산을 국가의 군사기지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 "원산의 발전"을 생각하는 것이 리얼리즘 앞에선 무력한 것일까. 그 답은 평화가 오면 해결된다. 평화를 만드는 경제가 원산을 발전시키고 원산의 안전보장도 해결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② 국제교류 : 교류와 무역의 주요 대상국은 일본이었으나 앞으로는 전 세계와 교류를!

일제시대에 원산항은 함경북도의 청진항과 더불어 동해안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일본과 동해횡단 직항로로서 1918년에 조선총독부 통제하에 조선우선(朝鮮郵船)이 운항하는 청진-원산-쯔루가(敦賀) 정기항로가 처음 개설되었다. 그후 일본쪽에서는 니가타 (新潟) 항이 발전하면서 1929년에 니가타-원산-청진-니가타 삼각항로가 개설되어 니가타에서 원산으로 출항시 철재, 유류, 석유, 비료 등을 싣고 가고, 청진에서 니가타로 출항시 콩, 시멘트 등을 실었다. 1931년에는 시마타니기선(嶋谷汽船)이 운항하는 청진-원산-니가타 항로가 개설되었다. 

해방 후 6·25전쟁으로 폐허로 된 원산은 항만과 철도가 재정비될 때까지는 무역과 국제교류에 나서기 어려웠다. 동해안에서는 청진항이 그 관문 역할을 하였다. 6·25전쟁 때 유엔군이 청진을 점령하였지만, 청진항은 파괴되지 않고 온존했기 때문이었다. 북한과 일본의 양국 적십자사간에 체결한 "재일조선인의 귀국에 관한 협정"에 따라 청진항은 일본측의 니가타항과 함께1959년 12월부터 재일동포 귀국사업의 출입항이 되었다. 1984년 7월까지 25년간에 걸쳐 총187항차 선박 운항에 재일동포93,339명(28,409세대, 일본인 배우자 약 1,800명 포함)이 청진항으로 귀국하였다. 첫 2년간에 전체 귀국자의 80%인 74,655명이 귀국하였으니 귀국행렬은 초기 몇 년에 집중되었다. 

1962년부터 북한으로 귀국하는 재일동포들의 수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 이유로는 우선 일본에서 호경기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재일동포들에 일자리 기회가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재일동포들이 대부분 경상도 등 남한 출신인 데다 일본의 생활에 익숙한 탓에 북한에 귀국한 동포들이 꿈꾸었던 "사회주의 낙원"의 생활방식에 적응하지 못하여 친족들의 추가 귀국을 말렸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러나 2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귀국사업과 이어지는 조국방문사업으로 북한에는 경제력을 가진 재일동포들이 기술과 자금을 공급하는 새로운 국제교류의 방식이 정착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모친인 고용희 씨(1952.6.16-2004.5.24)도 오사카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1962년에 청진항을 통해 귀국하였다.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귀국하자는 운동을 한 배경을 보면 1958년 가을부터 크게 일어났는데, 가나가와현 재일조선인 총연합회(총련)가 "재일조선인은 남쪽 출신이지만 조국은 북쪽 공화국이다"라며 북한에의 귀국 결의를 표명하였다. 이를 북한의 김일성 수상이 받아들이면서 전국적인 큰 운동이 되었다. 북한이 인력부족으로 재일동포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는 분석이나 일본 사회에서 실업 등 생활곤경에 처한 재일동포들에게 전후 경제재건에서 성과를 보인 북한에 대한 선전이 퍼졌고 북한이 재일동포들의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결정을 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의 귀국사업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보수계와 혁신계가 모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자민당 정부가 재일조선인 귀국사업을 지원하게 된 이유로는 재일조선인의 생활 보장 문제에서 재정부담을 덜기 위한 목적과 재일조선인들 가운데 사회주의 사상이 많아 이를 약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사회당 등 혁신계 정파들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재일조선인의 귀국사업을 지원하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이승만 정부와 민단계 재일동포조직은 반대성명을 내었다. 

한국 정부는 미수교상태인 일본에 공작원을 파견하여 재일동포 "북송"을 저지하려 했다. 니가타 일본적십자 센터 건물을 폭파하는 계획으로 훈련을 받고 1959년 12월에 폭탄을 가지고 니가타에 들어간 한국 공작원 두 명이 시내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일본경찰에 붙잡히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기도 했고, 일본에 상륙하지 못하고 바다에서 풍랑에 익사한 경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25명이 현지에서 체포당해 수형생활을 한 후 한국으로 강제송환 당했고, 12명이 일본 근해에서 조난으로 사망했다. 세월이 지나 2009년에 이명박 정부는 공작 활동 중 익사한 공작원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고, 2011년에는 "재일교포 북송저지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보상을 했다. 남북대립의 상흔은 현재진행형이다.

재일동포 귀국사업을 제외하면 1971년부터 원산이 동해지역에서 국제교류의 중심이 되었고 재일동포 청년 학생들의 조국방문단 입출입항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 쪽의 관문은 그대로 니가타였다. 원산항과 니가타항 사이에 [만경봉호]가 월 3-4회 운항하는 준정기적인 훼리항로가 개설되었다. 1992년부터는 2006년 일본 정부의 대북한 무역 교류 중단선언 때까지 [만경봉92호]가 만경봉호를 대신하여 취항하였다. 이 만경봉 항선을 통해 북일 간 무역도 이루어졌다. 원산항을 통해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산업 설비, 수송기계, 전자기기, 소비품 등을 수입하고 농산물, 의류임가공품 등을 수출하였다. 수산물과 광물 수출은 다른 전문항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돗토리현(鳥取県)의 사카이미나토(境港)시는 시의회가 1971년에 "일조우호촉진요망결의"를 채택하고 1992년 5월에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시 차원에서 원산시와 [우호 도시협정]을 체결하였다. 사카이미나토항도 일제시대에 원산항 사이에 항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사카이미나토시는 2006년 10월에 북한의 핵실험을 이유로 원산시와 맺었던 우호 도시협정을 파기하였다. 사카이미나토시 의회는 파기는 지나치다며 관계 동결을 권유했으나 시장이 강했하였다고 한다.

원산과 일본 사이의 무역을 포함한 국제교류는 북한의 핵무력건설에 대한 일본의 반발로 경제 관계와 항로가 전면 중단되면서 차단되었다. 재일동포들의 중국경유 북한방문은 계속되었고 원산 방문도 있지만, 대일본 관문항으로서 원산항의 기능은 중단되었다. 북한이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행동에 의해 북일간에는 핵무력과 교류가 모순적 선택 관계 (트레이드 오프)로 되었다. 

원산에 남은 국제교류는 중국과 러시아 등 우방국과의 교류 관계였다. 1960년에 세워진 송도원의 국제소년단야영소는 1,000명 이상이 동시에 숙박할 수 있는 야영소이다. 숙박장, 조리시설, 물놀이장, 전자오락실, 암벽체험, 보트 타기 등을 갖추고 세계의 청소년들을 1년에 한 번 원산 송도원에 불러모아 야영대회를 한다. 소년단이라고 하면 남한의 젊은 세대는 "방탄소년단(BTS)"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북한에는 "조선소년단"이 있다. 이 조선소년단은 만 7세부터 13세까지의 모든 학생들이 가입하는데 붉은 색 넥타이가 상징이다. 이 점은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에 있는 소년조직(소련의 피오네르)들에 공통된다.

청소년들의 국제야영대회로 유명한 것으로는 (보이)스카우트의 세계야영대회인 세계 잼버리 대회가 있다. 보이스카우트는 민족, 문화, 정치적인 이념을 초월하여 국제 이해와 우애를 다지는 것을 목표로 1908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북한에서는 1946년 6월 6일에 "조선소년단"이 설립되고 1950년에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폐지, 흡수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소년조직과 연대 활동을 하였는데 조선소년단의 구호 "항상 준비"는 소련 피오네르의 'Всегда готов!'(브셰그다 가또브!)를 번역한 거였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이 구호는 보이스카우트의 구호 'Be prepared!'에서 온 것이다. 

세계 잼버리대회는 4년에 한번 열리는데 한국에서는 1991년에 강원도 고성에서 개최된 적이 있으며 2023년에는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즐겁고 신나게 자라야 한다. 조선소년단이 세계스카우트연맹의 가입단체가 아니지만 정치적 이념을 떠나 세계 잼버리 대회를 원산에서 개최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해외동포, 중국,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인도, 독일 등에서 참가한 원산송도원국제소년야영대회 입소식 ⓒ 노동신문(2019년 8월 1일)
▲ 해외동포, 중국,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인도, 독일 등에서 참가한 원산송도원국제소년야영대회 입소식 ⓒ 노동신문(2019년 8월 1일)
▲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  조선신보(2014년 5월 28일)
▲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 조선신보(2014년 5월 28일)

③ 균형발전

북한은 지방의 균형발전을 경제건설의 중요한 축으로 하였고 원산은 그 중심에 있었다. 국가가 중공업 우선 발전 정책을 취하면서 지방은 자체의 원료로 경공업 등 소비재 부분의 지방공업을 발전시키는 정책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정책이 현실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계획경제 부문의 실적이 썩 좋지 않았다. 북한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의 국가경제발전전략을 수립하면서 2016년 4월에 [국가경제발전전략(2016-2020)] 계획서를 펴낸 바 있다. 이 계획서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구체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 기회에 분석할 예정인데, 이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실태는 1980년대까지 성장하였으나 1990년대에 크게 줄어들었다. 놀라운 것은 북한 중공업의 핵심인 철강이 설계능력 377만 톤에 생산능력 117만 톤(31%), 그리고 생산실적이 12만 톤(능력 대비 10%)이었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 통계청의 추계로는 2014년 철강 생산능력 655만 톤에 생산실적 122만 톤이었는데, 실제로는 남한 추계의 10%에 불과하였다는 말이 된다. 자료의 신뢰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소비재 부문의 생산 감소도 심각해서 1980년대의 최고 수준에 비해 대단히 낮은 수준이었다. 산업생산 퇴행이 심각했다.

이 계획서에서 원산에 대해서는 2020년 목표로 원산항을 500만 톤 처리능력의 세계적인 항으로 건설하는 데 힘을 집중한다고 하였다. 원산은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개발과 관련해서 그리고 지방의 균형발전과 관련해서 북한이 현재 가장 중시하고 있는 지방 도시임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국가경제발전5개년전략이 2020년인 금년에 끝나게 되는데 지난 5년간 북한의 산업생산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16년 이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실시되고 중국과 러시아도 이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믿을 건 국내자원이고 자력갱생의 "강원도 정신" 인데 그만한 성과를 전국적인 범위에서 이룩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경제 실태는 국가 전체로서는 많이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 지방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는 지혜를 찾아가고 있는데 국가(중앙)가 관리하는 부분은 생산 정상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궁금하다. 북한은 지방의 자율성과 국가관리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2020년 총결평가가 기다려진다.

<원산의 관광개발> 

국가경제발전전략(2016-2020)에 보면 대외경제(무역과 투자)에 대해서 중국에 과다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원료자원의 수출 비중이 높고 가공품의 수출 비중이 낮으며, 서비스무역과 기술무역 비중이 낮다고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27개 경제개발구들이 나왔으나 운영 중이거나 총계획이 완성된 개발구는 5개에 불과한 점도 지적하였다. 그리고 관광 부문에서 최고연도의 연간 관광객 수는 10만6천 명, 호텔관광객수용능력 7만여 명, 국제비행기와 철도의 여객수송능력은 12만3천 명에 불과한 점도 지적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는 국가의 관광산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대규모 사업이며 동시에 지방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사업으로 계획되어 2014년 6월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 제 48호로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개발을 공포했다. 북한의 강원도개발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계획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① 개발범위 : 원산-금강산에 이르는 6개 지구(약 430㎡)를 국제관광지구로 육성
(원산지구, 마식령스키장지구, 울림지구, 석왕사지구, 통천지구, 금강산지구)

② 인프라 개선 : 관광 인프라를 단계별로 지속적으로 확충
(항공) 원산공항 신설 개선
(항만) 원산항 개선, 갈마반도 여객부두 신설
(철도) 원산-금강산 120km 개건, 고속관광 철도(90km) 신설 
(도로) 각 지구간 연결도로 현대화 하고 지구별 윤환망 형성
원산-금강산 관광도로(170km) 현대화, 각 관광지구 연결로 현대화
(전력) 통천수력발전소와 안변청년발전소 생산능력 향상,

③ 생태환경 : 고체 폐기물처리장 배치, 오수처리장신설, 1인당 녹지면적 43㎡

▲ [조선 원산-금강산지역개발계획설명회] PPT자료(2015년 3월 20일, 심양)
▲ [조선 원산-금강산지역개발계획설명회] PPT자료(2015년 3월 20일, 심양)

원산지구에 대해서는 원산시 도시 중심부와 갈마반도 지구로 나누어, 도시 중심부는 상업봉사구역, 과학기술교류구역, 문화휴식구역을 구성하고 주택지구, 산업지구, 관광시설, 관광 숙박시설을 설치하도록 되었다. 갈마반도 지구는 초기 계획은 공항을 안변지구로 이전하고 갈마지구 전체를 경제개발구, 상업봉사구, 체육경기구, 회의 및 전시박람구, 숙박구, 해수욕장구 등 6개 구역으로 나누어 개발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갈마비행장이 군용비행장에서 1997년 9월에 민군겸용비행장으로 된 이후 이전까지 하는 데는 안보적 관점에서 이견이 나와 2015년에 갈마비행장을 민군겸용비행장으로 유지하기로 확정하고 1년 내에 공항을 개축하였다. 대단히 빠른 건설속도였다. 공항개축을 기념하여 2016년 9월에 원산국제친선항공축전을 열었다.  이후 갈마지구 개발은 사실상 명사십리의 갈마해안관광지구에 집중되었다. 원래 계획이 2019년 4월까지 완공 예정이었던 갈마 해안 관광지구 공사는 경제제재로 인한 자재공급의 차질도 있어 10월로, 다시 2020년 4월로, 그리고 다시10월 당창건 75주년까지 완공하는 것으로 세 번 변경하여 현재 막바지 실내장식 공사 중이라 한다. 어마어마하고 압도적인 관광시설 규모인데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규모의 해안관광 단지이다. 사진으로 보면 여기가 북한일까 하는 규모의 건물들이 원산 명사십리에 들어서고 있다. 앞으로 해외관광객을 유치하지 못하면 큰일이지 싶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북한에게도 악몽이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통 크게 원산 갈마 해안 관광지구를 건설해놓고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 악재가 등장한 2020년, 북한 정부는 원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베스트 시나리오", "굳 시나리오" 그리고 "배드 시나리오"가 준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베스트 시나리오"는 세계의 코로나 위기가 해소되고 남북간의 관광협력도 가능하게 된 상황이 되는 것이고, "굳 시나리오"는 우선 중국의 코로나 위기가 해소되어서 북-중간에 관광사업이 재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배드 시나리오"는 코로나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관광유치를 당분간 접는 것이다. 그럴때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으면 "배드 시나리오"는 관계악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남과 북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관계악화를 막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기 보다는 서로를 보듬어주는 민족성을 감추지말고 드러낼 때다.

▲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의 모습 ⓒ 조선중앙TV(2019년 4월 6일)
▲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의 모습 ⓒ 조선중앙TV(2019년 4월 6일)

 

※ 다음편에 "세계를 향한 원산을 바라보다 (종결)" – 6.15공동선언의 의미로 본 강원도의 협력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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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우 (테이쿄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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