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권 강화를 위한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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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권 강화를 위한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
주거권, 건강권, 노동권, 환경권 등 사회권적 기본권 보장관련 개헌포럼
  • 2018.02.07 13:37
  • by 이진백 기자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주거권, 건강권, 노동권, 환경권 등 사회권적 기본권을 잘 포함하고 있을까? 

현행 헌법이 마련된 1987년 이후 30년간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이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이미 오래다. 또한 촛불혁명 이후에 국민들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그리고 시대변화에 맞게 인권과 평등에 대한 조항이 새롭게 정립에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이를 위해 빈곤, 소비양극화, 경제불평등 등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권적 기본권 보장이 향상돼야 한다. 

그동안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 문제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소모적 논쟁과 갈등에 빠져 정작 시급한 국민의 사회권적 기본권 확충과 경제민주화 실현에 대한 논의를 하지 못했다며, 제대로 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이인영 의원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공동주최로 '사회권 보장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개헌 포럼'이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1부와 2부 두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최창우 집걱정없는세상 대표와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가 발제자로 나서 개정헌법에 포함돼야 할 '주거권'과 '건강권'을 중심으로 방향을 제시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을 좌장으로,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가 지정 토론자로 참여했다. 

2부에서는 권영국 변호사(경북노동인권센터장)와 전동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제자로 나서 실질적 보장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노동권'과 '환경권'의 개헌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이 좌장을 맡고 권미혁 의원(더불어민주당),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포럼의 개회사에서 "그간 국회에서 정치·시민적 기본권, 지방분권, 정당과 선거제도, 정부 형태와 권력구조 관련 논의는 많이 이뤄졌지만 사회경제적 분야의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깊이 검토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이 먹고사는 데 어려움 없는 좋은 개헌을 이루고, 더 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주거권' = '인권', 주거권·정주권 보장을 헌법에 명문화해야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집걱정없는세상 최창우 대표는 "세입자가 2년마다 강제퇴거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은 사회 불안정의 근본 원인이고, '집'에 살지만 '내 집'으로 느끼지 못하는 세입자가 2,400만에 이른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인권후진국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지표"라며 "헌법에 주거권을 명문화할 때 계속거주권 보장과 공정 임대료제 도입, 적정주거 보장의무, 강제 퇴거 원천 봉쇄, 홈리스에 대한 근본적인 사각 전환과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창우 대표는 "(독일 GEWOS 연구소에 따르면) 독일 세입자의 평균 거주 기간은 12.8년이고, 20년 이상 한곳에서 산 세입자도 전체 세입자의 22.7%에 이른다"며 "이것은 독일 민법이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내 보낼 수 없다는 것을 명문화 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 정당한 사유 없이는 해지 강요 못한다. (독일 민법 573-1-1) 
△ 차임의 인상을 목적으로 해지를 금지한다. (독일 민법 573-1-2)

최 대표는 헌법의 기존 조항을 주거권 관점에서 수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34조 1항('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지닌다')을 '국가는 모든 사람의 인간 존엄성을 보장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로 수정하고 '모든 국민은 주거권과 정주권을 보장 받는다'로 새롭게 신설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존엄성과 인권, 기본권 보장은 희미하고 국민이라는 이름의 사회구성원의 의무는 강조된 반면에 인간 존엄성과 평등,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은 희미하거나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다"며 "국가주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헌법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김남근 변호사는 "주거권을 독립된 기본권의 하나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며 "사회권의 기본 이념인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핵심내용에 주거생활이 포함된다는 점을 사회적 기본권의 기본이념 조항인 헌법 제34조 1항('모든 국민은 의·식·주 등 기본생활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에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거나 주거권 조항을 신설해 '최저주거기준'과 '적정한 임대료'를 헌법 개념으로 승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현행 헌법은 주거정책의 기본 이념을 쾌적한 주거생활로만 정하고 있는데, 과도한 임대료 부담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주거를 이전해야 하는 주거의 불안정 해소를 위해 임대차 안정화 정책을 주거정책의 핵심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헌법 제122조를 토지공개념 조항으로 규정하고 제2항에 토지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 규정과 제3항에 국가의 공공주거정책 추진의무의 근거 규정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건강권' = 의료(비) 보장 국가 책임이자 의무

'건강권'에 관해 발제를 맡은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11년 현재 191개 유엔 회원국 중 14%가 보건에 대한 권리를, 38%가 의료에 대한 권리를 그리고 36%가 전반적 건강에 대한 권리 보장을 헌법에 명시했다"며 "헌법 전문에 기본원리로서 '생명과 건강 존중의 원리'가 포함되어야 한다. 건강권은 별도의 독립 조항으로 명시돼야 한다. 건강권 보장을 위해 헌법상 차별금지, 노동3권, 인간다운 생활권, 환경권, 주거권 등 건강권 관련 기본권 강화가 이뤄져야한다"고 제안했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료보장의 권리와 국가 의무 관련 조항은 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언급이 전부다. 따라서 포괄적 건강에 대한 권리만을 명시하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강제하지 않아, 그나마도 지향적 권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헌법이 정책과 예산의 지침 역할을 하면 국가 책임은 훨씬 명료해질 것이다. 

김 교수는 "건강권을 헌법적 권리로 규정하고 보다 구체적인 건강권의 내용을 명시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일 뿐 아니라 실제로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퇴행을 방지하는 제도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나아가서 건강권이 보건의료 서비스나 의료보장제도에 대한 권리 수준을 넘어서서 소득, 교육, 주거, 노동, 고용, 차별금지 같은 건강에 대한 사회적 결정 요인들이 건강권 조항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건강을 추구하는 여타 관점과 달리 건강을 인권으로 바라보려는 이유는 인간
존엄성, 권력 관계의 재조정, 의무와 책무성 기제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민주주의나 건강 형평성 같은 가치와도 밀접하게 연관짓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개헌과 건강권'의 토론자로 나온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건강권을 개별 정책과 프로그램에 국한해 논의하다 보면 결과로서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을 간과하기 쉽다"며 김창엽 교수의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하지만 "건강권이 헌법에 명시된다면 보건 및 의료에 대한 접근권은 하위범주로 포함돼야 하고, 건강권의 내용 속에 예방과 치료, 결과 등을 명시하는 다양한 하위권리가 배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건강권이 헌법에 명시 되어야 할 필요성과 관련해서는 건강권 등 사회권은 추상적 개념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각종 지표와 수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실에서 적용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의견도 내놨다.

'노동권' = 사회의 양극화·차별 해소 

2부 포럼 첫 발제자로 나선 권영국 변호사는 "노동자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다수 세력임에도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으며, 노동 3권 보장 수준은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양국화를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노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법제도와 관행의 기준이 되는 노동헌법 규정을 수정·보완하는 헌법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노동 문제의 핵심은 차별이며, 사회권의 핵심 권리인 노동권이 무시되다 보니 노동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돼 있다"며 "헌법 제11조 평등권 조항에 고용형태 등 사회적 신분을 차별금지 사유에 추가해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로 발생하는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을 바로잡자"고 제안했다.

권 변호사는 헌법 개정의 방향으로 ▲헌법상 용어를 '근로', '근로자'에서 '노동', '노동자'로 바꿔 노동의 능동성과 주체성을 분명히 하고 ▲헌법 전문에 '노동 존중' 사회를 지향함을 반영하며 ▲기존 차별금지사유에 '고용형태'를 추가해 평등권을 강화하고 ▲헌법 제 32조 '근로의 권리' 조항의 수정 및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와함께 ▲여성 노동의 평등한 보장과 연소자 노동의 특별보호 보장 ▲헌법 제33조 노동3권 조항의 수정 및 강화 ▲사회보장권의 보장 ▲노동권의 절차적 보장을 위한 노동법원 근거 규정을 명시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는 "노동권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노동법제도의 근본규범인 노동헌법 규정을 시대변화에 맞게 수정하고 보완하는 노력과 맞닿아 있다"며 "노동헌법의 개정을 통해 노동권제한법으로 작용하고 있는 노동법과 그보다 더 나간 법원의 판례를 시정해야 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아이 돌봄 등을 가족관계라는 틀을 넘어 사회적 재생산 관계로 확장시켜 볼 필요가 있다. 부모나 가족의 돌봄은 사적 영역인데다 한부모가정이나 대안가족도 많기 때문에 전통적 가족 모델이 아닌 방식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토론했다.

'환경권' =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초석 

마지막 발제를 맡은 전동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헌법의 환경권은 선언적이다라는 비판적 의견이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살아가려면 지속가능 측면에서 환경권이 실질적으로 확립돼야 한다. 지속가능발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이고 의제이다"라며, 헌법에 환경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환경권과 관련한 개헌 논의 초점은 '지속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 기본권·총강분과가 내놓은 자문보고서를 보면, 헌법 전문에 '지구생태계와 자연환경의 보호', '모든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 '미래세대' 등의 표현을 쓰자는 제안이 들어 있다. 또 환경권 강화 조항에 '국가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보전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헌법 제9조를 '대한민국은 생태계와 자연환경 보호·유지에 노력한다'로 수정하는 내용이 개헌에 반영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토론자로 나선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권에 '미래세대'가 들어가는 건 좋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넣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다른 개념이 생기면 그걸 또 헌법에 넣을 건지, 이 개념이 헌법에 넣을 만큼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7년 6월 항쟁에서 촉발된 현행 헌법의 체계는 시민사회를 탈정치화시키고 개개의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배제해버리는 한계가 있었다"며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게끔 하는 방향으로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헌법 조항처럼, 사회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 역시 개헌안에 구체적으로 담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기본권 실현을 위한 개헌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사회권 보장과 관련한 내용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토론 참가자들은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시민들의 사회권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개헌안을 꼭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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