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남북을 잇다 ③] 사회주의체제개혁과 협동조합: 북한에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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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남북을 잇다 ③] 사회주의체제개혁과 협동조합: 북한에 주는 시사점
  • 2020.06.04 09:00
  • by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장)

사회적 경제라는 키워드로 남과 북이 경제협력을 해 보자는 제안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낯선 주장이다.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은 작년 9월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심포지움'과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이 과정은 발표자들이 깊은 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게 만들고, 남북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로서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정리해 책으로 담아낼 수 있게 했다. 하나누리와 라이프인은 7주 동안 진행될 연재를 통해 출간 예정인 '사회적 경제, 남북을 잇다(맑은나루)'의 주요 핵심 메시지를 공유한다. [편집자 주]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 남북한에서 사회적 맥락과 인식의 비대칭 

사회주의 체제와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연대경제는 양립 가능할까? 물론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정립된 '사회주의(socialism)'는 고립된 개인이나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라 '개인과 단체들의 집합체로서 사회'를 인간생활의 중심적 제도로 간주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사회연대경제 자체를 그 기반으로 성립되는 사회체제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과 아시아 각국에서 성립된 20세기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도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는 사회·경제조직의 기본을 이루는 제도로 채택되고 유지되어 왔다. 개인별로 각자의 이윤추구를 첫 번째 목적으로 삼는 자본의 논리가 아니라 조직(사회)구성원들의 공통이익 증진을 우선적 원칙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체제와 협동조합·공동체는 서로를 배척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혁명 지도자로서 혁명 직후 협동조합을 국영화했던 레닌이 1920년대 초반 '신경제정책'(NEP)을 천명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협동조합 활동의 합법화는 물론 제도적 지원을 강조한 것도 양자가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뒤늦게 인식했기 때문이었다(김창진, 『사회주의와 협동조합』(한울아카데미, 2008)).

하지만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연대경제의 개념과 실제의 성과에 대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과 국가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나라들에서는 상당한 인식의 차이가 발견된다. 기존 국가사회주의 또는 탈사회주의 체제에서 협동조합은 대개의 경우 '구태의연한, 비효율적 사업체'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협동조합 정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원(조합원)들의 자율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관변기구로 변질된 경우가 많았던 데다 대체로 그 위상이 국영경제의 하위범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인민들은 물론 자유주의적 엘리트들까지도 체제 전환 국면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도의 도입을 자기네 경제 제도의 '혁신과 도약'의 능사로 여기고, 협동조합은 '익숙하지만 혁신적 성격은 찾아볼 수 없는 전통적 제도의 하나'일 뿐이라고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연대경제는 오히려 기존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과잉제도화(즉 사실상 국영화) 이후 사회변화에 걸맞은 혁신의 부재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과거 경험의 차이는 현실 인식의 차이를 낳고 정책과 제도 설계의 차이를 초래한다. 이것이 공공정책 수용의 보이지 않는 기반을 구성하는 사회적 맥락의 중대한 차이이다. 따라서 외부에서 북한의 개혁에 대한 정책 조언과 제도 설계를 고민하는 경우 바로 이러한 '메타 현실'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소련, 동독, 쿠바의 경제개혁과 협동조합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 이후 1930년대 초반까지 소련에서 시행된 농업정책과 협동조합 관련 제도 형성은 2차 대전 이후 동유럽과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모델이 되었다. 1920년대 최고 지도자 레닌의 주도로 도입된 '신경제정책(NEP)'은 소련체제의 성립 이후 최초의 경제개혁 시도였고 그에 따라 협동조합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볼셰비키는 본래 "협동조합은 부르주아 체제의 유산"이라고 보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혁명 직후 각종 협동조합 제도를 국영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1차 대전의 여파 속에서 내전까지 치루며 경제가 완전히 황폐화하자 경제운용 모델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레닌은 1921년 초 신경제정책(NEP)을 선포하며 협동조합에 다시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하도록 조치했다. 그는 심지어 "협동조합을 신경제정책에 맞추려 하지 말고 신경제정책을 협동조합에 맞추도록 하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이에 따라 1920년대 소련 전역에서는 농협, 소협, 신협 등 각종 협동조합 형태가 번성했고, 소련 경제의 신속한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레닌 사후 부하린은 "러시아와 같은 농업·농민의 나라에서는 협동조합이야말로 사회주의로 가는 간선대로다"라고 하면서 '협동조합의 사다리' 개념을 주창했다. 농촌의 모든 계층이 협동조합을 통해 이익을 보면서 동시에 농업의 사회화를 이루어가는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즉 빈농·소농은 집산농장을 통해, 중농은 소비조합을 통해, 그리고 심지어 부농도 신용조합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체계에 포섭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부하린의 전략은 농민들의 자기 이해를 충족해 주면서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로 이행하자는 것, 즉 점진적 농업협동화 방식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었다. 그의 제안은 1920년대 중반까지 소련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실천 가능한 것으로 보였지만, 1930년대 초반 스탈린의 정치적 승리가 확정되면서 폐기되고 말았다. 

이후 소련의 집산농장은 공식적으로는 협동조합의 형태를 유지했지만, 실제적으로는 국가의 하위 농업생산 단위로 기능하게 되었다. 소련 전역의 도시와 농촌의 소비조합 역시 '소비조합중앙회' 중심으로 국가의 물품 공급기관이자 상품 판매망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변질되었다. 그런데 소련의 집산농장은 처음에는 농민의 엄청난 희생 위에 건설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성격에서 변화를 보였다. 국가의 강압적 조치만으로는 생산성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는 완화되면서 농민들의 이해관계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집산농장은 농업생산기관이면서 동시에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심적 사회기관으로서 기능했다. 농촌 지역의 도로 보수나 학교 시설의 유지, 동네 축제, 지역사회 주민들의 경조사 등에서 평소 적립되는 농장의 공동기금은 매우 중요한 자금원이 된 것이다.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이름으로 개시한 소련의 개혁정책은 협동조합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체 상태에 빠진 인민의 자발성을 회복하여 '사회주의의 갱신'을 목표로 했던 고르바초프 정부는 1988년 협동조합법을 통해 신경제정책 시기처럼 협동조합의 긍정적 기능을 재평가했다. 3인 이상이 자율적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인민들은 협동조합을 그 사회적 가치 측면에서 받아들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변질된 사기업'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보였다. 협동조합의 가치와 원칙에 대한 진지한 재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법적으로 허용된 조직이 실제로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는가를 보여준 사례가 된 것이다. 결국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진행된 급격한 사유화·자본주의화 과정에서 협동조합의 본질은 채 복구되기도 전에 유실되고 말았다. 

1990년을 전후한 독일통일 당시 서독인들과 외부의 자유주의자들은 동독의 '사회주의식 농업생산협동조합(집산농장)'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그 몰락을 예상하고 그것의  해체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동독 지역에서는 대형 농업생산조합(LPG)의 우월성이 입증되었다. 1952년 설립된 동독의 농업생산조직이었던 LPG가 법인격을 바꾸어 대규모 영농기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었다. 통독 이후 LPG는 대규모 생산체계의 이점을 살려 생산성과 시장경쟁력 면에서 서독의 소농체제를 능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제도적으로는 LPG의 부활, 상업적으로는 서독 지역에 비해 곡물 농업과 채소 농업의 상대적 우월성 확보라는 '승리'에도 불구하고 동독지역에서 진행된 체제전환 과정은 심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동독 지역의 가축 사육과 낙농업은 쇠퇴의 길을 걸음으로써 가축생산조합 직원 다수의 실업이 초래되었고, 사회주의 체제에서 유지되어 온 농촌 공동체성의 상실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형 LPG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필자가 2019년 여름 관찰한 예나 근방의 Etzdorf 농업협동조합은 '농협의 한계를 넘어선 다목적 사업 조직', 즉 농촌 지역에 위치한 복합 생산·문화기업으로 진화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여전히 밀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이 조합은 인근·도시주민들을 상대로 한 농장 상점은 물론 호텔, 정육점, 음식점, 승마 체험장까지 운영하면서 수익성을 제고하고 지역사회 주민들의 일자리 만들기에도 기여하고 있었다. 동독 지역 소형 농협의 이러한 진화 사례는 향후 남북한 농협의 진로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  동독 예나 부근 Etzdorf 농협의 직영매장 겸 호텔 ⓒ 김창진
▲ 동독 예나 부근 Etzdorf 농협의 직영매장 겸 호텔 ⓒ 김창진

북한처럼 오랫동안 미국의 봉쇄에 시달려온 쿠바는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1993년 '협동생산 기초단위(UBPC)' 허용, 국유지 임대 경작, 자율적 소형 농협 설립 가능 조치 등을 취함으로써 심각한 경제난의 압박 속에서 협동조합을 통한 활로를 모색했다. 그리고 2012년의 협동조합법을 통해 비농업 부문(교통·소규모 제조업·서비스업 등) 협동조합 설립도 가능하게 되고, 다양한 협동조합들 사이의 조율을 통한 2차 협동조합 내지 협동조합 클러스터도 조직도 가능하게 되었다. 

필자가 현장에서 관찰한 '루카 농장'은 정부로부터 땅을 임대, 조합원 5명이 3헥타르의 농장에서 각종 채소를 재배하면서 아바나 시내에서 작은 파스타 식당도 운영하고 있었다. 또 다른 '코인시덴시아(Coincidencia)' 농장 구성원은 18가족으로, 매니저 가족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인근 지역에 살면서 출퇴근을 한다. 이 농장은 대형 협동조합의 경작지 일부를 10년 단위로 임대받아 망고, 바나나, 옥수수, 커피 등을 재배하는 곳으로 농작물뿐만 아니라 도자기도 같이 생산, 농장에서 도자기 축제를 열면서 '예술 농장'을 가꾸고 있다. 다른 한편, 도시의 새로운 제조업 협동조합인 '스테인드글라스 복원 협동조합'은 청년 여성노동자 3명이 모여 만든 작업장으로서, 자기네 전공을 살려 스스로 일자리도 만들어내면서 색유리를 가공·제작하여 수도 아바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유적 복원 사업에 기여하고 있었다. 

▲ 노동과 예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어낸 마탄사스주의 코인시덴시아 농장 ⓒ 최윤오
▲ 노동과 예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어낸 마탄사스주의 코인시덴시아 농장 ⓒ 최윤오

쿠바 협동조합체계의 특징은 첫째로, 국가가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보유하고, 협동조합들에게 임대해주는 시스템이다. 협동조합은 생산물과 서비스를 시장가격에 팔고 이익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 또 각 협동조합들은 공공조달에 참여(즉 국가기관과 거래)하며, 국가의 소신용 제공 혜택을 받고, 도매시장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구입한다. 특히 자주적 소형 농협의 경작권은 후손에게(만약 그 후손이 계속 농업에 종사하겠다고 하면) 상속도 가능하다. 다음으로 쿠바의 협동조합체계는 농업생산조합과 공공유통체계의 긴밀한 결합이 특징이다. 농장의 생산물들을 유치원·학교·병원 등에 일차적으로 의무공급하고, 국가에 일정한 세금을 납부하면 나머지는 시장 판매를 하여 수익을 올리고 자가 소비가 가능한 것이다. 생산물의 판매를 위하여 가정 텃밭 주인들과 자급농장, 국영 유기농장 등 협동농장들은 직판장을 운영할 수 있다.

최근까지 이루어진 쿠바 협동조합의 성과로는 국가의 직접적 통제를 벗어난 자주적 협동조합의 발전과 민간 고용 창출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협동조합 부문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보다 견실하게 발전되면서 개인들의 사익 추구를 위한 민간기업 발달과 보조를 맞춰 간다면 국영-협동조합-사영 3부문 소유권의 균형 발전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쿠바 협동조합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선포되는 정책 및 법률과 현실의 괴리가 우선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예컨대, 2017년 현재 비농업분야에서 500개 이상의 협동조합이 승인되었지만, 실제로는 약 절반 정도만 운영되고 있다. 또한 쿠바 협동조합 종사자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고용인원에 따라 높아지는 노동세금, 자본조달의 한계(농업 부문의 소신용과 투입의 비효율성), 유통업 저발전과 판로 제한(제한된 도매시장)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소련, 동독, 쿠바의 사례들은 향후 북한의 경제개혁과정에서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연대경제 부문을 전체 경제 구조에서 어떻게 배치하고 그 장점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뜻깊은 시사점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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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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