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품처럼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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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품처럼 따뜻한 말
  • 2018.01.29 13:13
  • by 양영희 시민기자
출처 픽사베이

얼어있는 달천변을 따라 가면 목도시장이 있고, 그곳엔 흙살림 동일 한의원이 있다.
‘경쟁을 압축시켜 놓은 도시 생활이 싫어서’괴산으로 오셨다는 박석준 원장님은 매일 70,80대 노인 분들에게 허리와 무릎 치료를 하신다. ‘의료사각지대의 사람들은 아픈 곳도 같다고, 그것이 마음 아프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히신 글을 읽은 적 있다. 그래서 일까? 나는 원장을 보기만 해도 온 몸이 무장 해제되며 편해진다. 참 이상하게도 원장님이 따스한 미소로 바라만 봐도, 손가락 몇 개로 맥만 짚어도 내 몸은 치료가 시작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정확하게 병명도 모르겠는 몸 상태에 스멀스멀 스러져가는 어두운 기운으로 잔뜩 웅크려있는 내게 말씀하신다.
 “에구, 이 병원에 오시는 80대 할머니들 보다 몸 상태가 안 좋네요.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요?”
그 한마디에 눈물까지 주루륵 난다. 엄마 품처럼 따뜻한 말이다.
 “허리가 많이 아파요”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연세 드신 원장님 앞에서 아프다고 말한 것이 민망해진다.
 ‘원장님이 아프면 누굴 찾아가실까?’
속으로 원장님이 아플 때를 생각하는데, 원장님은 정성스럽게 아픈 부위를 확인하시며 침을 놔 주신다.

아픈 사람에게는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걸 원장님을 만나면 생각한다. 이렇게 쉽고 단순한데 우리는 왜 위로랍시고 더 아픈 말들을 할까? 주변 사람들은 어디가 왜 아프냐고 묻는다. 그런데 아픈 나는, 아픈 곳은 말하겠는데 왜인지 까지는 답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 아픈지, 아픈 사람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처럼 물으면 기운이 빠진다.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냥 쉬라고, 몸 챙기라고’툭 던지는 말로 자신들의 일상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그리고 가끔 덧붙이는 말들을 늘어놓는 경우는 서운할 정도로 가혹한 말들이 많다. ‘관리 잘해라. 너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 비타민은 먹냐? 병원엔 잘 다니냐? 운동은 하냐? 운동만으로 안 되니 챙겨먹어야 하는 것들을 따로 사 먹어라......, ’등 매뉴얼은 끝이 없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있으면 몸이 아픈 게 모두 내 탓으로 여겨진다. 그런 생각이 들면 누구에게 아프단 말을 하기도 망설여진다. 내 탓이라면 체력이상으로 무언가를 했거나, 잘 못 챙겨 먹었거나, 운동을 안했거나, 병원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여러 이유 중에 한두 가지가 선택되어 지겠지. 결론은 나는 내 몸을 책임지지 못한 사람으로 진단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진단은 우울감이 더 커지게 한다.

사람들의 이런 논리 속에는 잘못된 전제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이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공부를 잘하게 될 거라는 논리와 같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공부처럼 몸도 그렇다. 어떤 이는 태생부터 허약하고 어떤 이는 강인한 체력으로 평생 병원을 모르고 살기도 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언니인 나를 업고 다닐 정도로 힘이 좋았으며 지금껏 몸 져 누운 적이 한 번도 없다. 허리가 아파 침을 맞고 온 날 동생과 통화하는데, 동생은 ‘살면서 딱 한번 허리가 아파봤다’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동생이 운동을 많이 하거나 몸을 챙기며 살지도 못했다. 험한 육체노동, 손님들한테 시달리는 감정노동까지 하느라 발바닥이 붙어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러니 이런 불공평함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친정 엄마한테 수화기를 들어 농담처럼 따져 물었다. 왜 나만 이렇게 낳으셨냐고?

할아버지는 살아계셨을 때 말씀하시곤 했다.
“아이고 우리 영희가 용 됐네.”
가망 없던 신생아가 비실비실 걸어 다니더니 반듯하게 사람노릇하고 살아간다고 대견해 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노력하고 바닥부터 없는 힘을 끌어 모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난 앞으로 자주 아프다고 투정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원대한 계획도 갖지 않으려 한다. 다만 며칠 지나고 회복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하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겠다. 가능하면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하는 거대 자본의 의료 산업 시스템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내 몫의 삶을 살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 자주 아픈 사람이 있거든 건강 챙기라고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도 안간힘을 내서 사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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