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놀면 사람들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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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놀면 사람들은 모인다
우츠미 켄이치 일본 고베시 나다구 마을 활동가, 시민경제포럼 참석해 고베 지진 이후 마을 복구 활동 경험 소개...마을 만들기를 넘어 '놀기'
  • 2018.01.26 12:05
  • by 강찬호 기자
우츠미 켄이치 마을활동가는 주민과 함께 하려면 먼저 재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밌게 하다보면, 어느 새 이뤄지는 식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경주와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재난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달라져야 한다'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재난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지진도 우리의 현실이 되었고, 곧 닥칠 또 하나의 어두운 미래가 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남일이 아닐 수 있다는 원전에 대한 걱정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직접 고통을 경험한 당사자들에게는 더욱 심각하고 절실하다. 동시에, 재난은 우리사회에 숙제를 남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에게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주민 스스로 문제해결의 당사자로 나서야 하는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지만, 국가보다 주민 스스로 먼저 나서는 것이 '옳다 혹은 바람직하다'라는 선명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어, 귀가 쏠깃해진다.  덧붙여, '재밌게' 대응하자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어  '발상의 전환'이 놀랍다. 방법은 간단하고 단순하다. '마을에서 놀면 된다'는 것이다. 시민의 집단지성, 발랄한 상상은 재난 대응의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통찰, 영감을 준다.

재난 대응, 시민들의 상상력을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재난 복구와 대응에 대한 발상의 전환...'마을에서 놀기'를 통한 집단지성과 상상력

1월 25일(목) 오후2시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사)씨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관으로 '지역 시민사회와 재난복구'를 주제로  제1차 시민경제포럼을 열었다. 포럼의 제목도 눈길을 끌었다. '나와 이웃의 위기에 지역 시민사회,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응답하는가?' 일본 고베시 마을활동가인 '우츠미 켄이치'가 초청 연사로 참여해 일본 고베 대지진 이후, 재난 복구 과정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는 마을만들기 방식, 혹은 그 연장에서 재난 복구를 하는 기존의 방식(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마을에서 놀기'를 통한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그 사례를 들려주었다. 전자가 행정이 주도하는 도시계획, 시설 복구 중심의 하드웨어적 접근이라면, 후자는  주민 스스로 나서면서 재밌게 삶을 복원하는 과정을 지향한다. 

우츠미는 1995년 1월 17일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발생할 당시, 동경에 있었다. 그는 고베시 나다구에서 나고 자랐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부친이 죽을 뻔한 아찔한 위기를 겪었지만 이웃 주민들의 구조로 무사했다. 다른 가족도 무사했다. 그는 동경에서 그래픽, 디자인 분야 일을 하다가 고베 지진을 계기로 고향 마을로 돌아와, 마을활동가로 살아오고 있다. 초기 재난 복구과정에서 마을만들기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행정과 주민들을 연결하는 중재활동도 했다. 지진 발생 1,2년차에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재난 복구에 임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들도 지쳐가고 분산됐다. 주민들 간에 갈등도 있었다.

우츠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민들이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마을에서 놀기'였다. 좌충우돌, 재밌게 해보고 싶은 것을 마구 해보는 식이었다. 예를들면 이런 것들이다. 전철이 지나는 교량(다리) 아래 마을통행로 통과 구역을 '림보 동문'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냥 허리를 굽히고 지나는 것이 아니라, '림보게임'하듯 지나가보라는 요청이고, 이곳에서 림보춤을 추는 이벤트도 개최한다. 산에서 벼룩시장을 개최하고, 마라톤대회를 연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로 역전에서 도시락도 팔고, 마을 상점도 열어 마을에서 생산되는 상품을 판다. 시가 운영하는 시영버스에 마구 올라 깜짝 이벤트로 마을 가이드도 한다. 유쾌한 마을 게릴라다. 마을신문을 만들어 보급하고, 마을 블로그도 만들어 마을 정보를 공유한다. 재래시장 내에 상점가를 돌면서 반찬 등 음식을 종이접시에 담아가는 이벤트도 개최한다. 재래시장 상점을 활성화하기 위한 작전이다. 마을 곳곳을 재밌는 공간으로 엮에내는 것이 우츠미의 활동이다. 

행정에 기대기 보다는 주민 스스로 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재밌는 일을 먼저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그는 무겁게 접근하는 방식, 절차를 부여하는 방식을 사양한다. 그냥 내키는 대로 시작한다. 그가 하면 하나, 둘 따라하고 동참하는 식이다. 열명도 안 되는 이들로 시작된 마라톤 대회가 백명 규모로 늘고, 천명이 넘는 행사로 정착되는 식이다. 호의주의로보 마라톤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행사를 강행한다. '우리는 재난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생존하는 방식, 감수성을 키우기 위함이다. 선택은 참가자의 몫이다. 행사 참가로 인한 위험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행사를 위한 행사도 하지 않는다. 비용 없이 혹은 최소 비용으로  행사를 치른다. 자원봉사자들이 한 몫 거드는 식이다.

빗 속 마라톤을 뛰면서 위기대응 몸에 익혀...이웃과 관계, 공동체 회복은 재난대응 자산 

이런 이벤트와 행사에 참여하면서 주민들은 마을을 더 잘 알게 되고, 애정을 갖게 된다. 재난이 닥친 마을을 떠나기 보다는 다시 애착을 갖고 정주하도록 이끈다. 재난이 닥치면 국가, 행정당국의 손길이 미치기 전에, 스스로 혹은 가족과 이웃의 도움으로 먼저 대피를 해야 하기에 이웃과의 관계, 공동체 회복이 우선이라고 하는  깊은 문제의식이다.  '마을에서 놀기'가 단순하게 노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마을을 알게 되면 구조 활동에 도움이 된다. 마을을 도는 투어를 다니면서 마을 지리를 익히게 된다. 외부에서 구조 손길이 닿을 때 소재지 파악이 안 돼 늦어진다. 마을에서 놀기를 통해 마을 정보를 알게 되면 바로 연결이 된다. 내가 사는 마을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재난이 일어나면 마을에 애정이 없어지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기 쉬워진다. 마을 복구가 가능하려면 마을을 좋아해야 가능하다. 공동체 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유대 맺는 분위기가 없지 않은데, 자연스럽게 재밌는 일이 먼저 있고, 그 일에 참여하면서 저절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재밌다고 생각되는 것을 바로 실천으로 옮겨보는 게 중요하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 혼자 하기 보다는 거리나 공원 등 공공의 장으로 가져와 함께 해보는 것이다"

우츠미는 행사를 위한 행사는 사양한다. 비용 없이 혹은 최소비용으로 시작한다. 어느 새 시민들이 나머지를 채운다. 마라톤 대회에 마련된 간식코너.

이런 마음도 있다. 고베 지진에 대한 전 국민적 응원이 당사자들에게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응원이 부담이 되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 마라톤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열심히 안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마라톤 행사이지만 뛰던 걷던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설렁설렁 걸어도 된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또 다른 위안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베어 있다.

행정에 기대기 보다는 주민들이 먼저 하면 행정은 따라와...재밌는 것 함께 해보라

우츠미의 또 다른 일성. 행정과의 관계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지방)정부 찾기보다는 먼저 실행해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정부(행정)과 협력해서 일하는 경우라 하더라 주민들이 먼저 이니셔티브를 갖고 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민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정부가 따라오도록 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활동해왔다." 주민들이 스스로 재밌게 해가고, 그 일이 주민들의 호응을 얻게 되면 행정은 따라 온다는 확신이다. 우츠미 사례발표를 들으면서 간간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 흐믓한 미소는 어쩌면 당연하다. 재난을 유쾌하게 극복하고자하는 '마을에서의 놀기'에 깊은 울림을 느껴본다.

이날 포럼은 우츠미 발표에 이어 세월호 아픔을 마을에서 치유해가는 '힐링센터0416 쉼과힘'의 활동사례, 경주지진 이후 경주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자체 대응 역량을 키워가는 국내사례가 소개됐고, 참가자 전체 토론과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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